<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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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그렇다면 신을 가까이 하면 이 권태를 잊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러나 「신」보다는 「생명의 원리에 충실하다면…」이라는 말이 더 그럴 듯할 것 같군요.합리주의에 익숙한 인간이 설득력 없는 신을 맹목적으로 가까이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아마도 인간은 신을 가까이 하는 방법,생명의 원리에 다 가가는길을 자기 안에서 합리적으로 찾아야 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해서 찾아야 할까요?』 상운이 고개를 다소 수그러뜨리고 물었다.집중할 때 상운이 하는 버릇이다.재밌다.신과 종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프로이트의 논리를 신과 악마와 연결지은 것은 그럴 듯했다.비록 이 놈의 개똥 철학이겠지만 그럴 듯하다면 예사로 넘겨서는 안된다.모든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그럴 듯한 것에서 출발해 그럴 듯한 것으로 이어져 왔으니 말이다.이 얘기가 이 놈의 힘이라면 일단 철저하게 흡수할 필요가 있다.
『그건 사람들 나름대로 처한 처지나 위치에 따라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상운씨는 뭐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사회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니 우선 생물학적인 데서 그 길을 찾아 보죠.생물학적인길은 아무래도 상운씨 의지로는 감당하기 힘든 본 래적인 힘이 있으니까요.』 『유전적인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요.사람의 한평생은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고도 하지만 수백만분의일 정도의 영향력 밖에 못미치지요.수십억년을 내려온 생명이기에100년을 채 못사는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극히 한정돼있으니까요.일단은 생물학적인 길에 서 찾아보고 다음으로 상원씨의 현실에서 찾아보죠.』 『감사합니다.면담료는 나중에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저에게 어떤 생물학적인 길이 예정돼 있을까요?』면담료는 필요없습니다.우리는 이미 친구니까요.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후 생명의 가장 큰 과제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습니다.생명은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그 생명의 연장은 맹목적으로 삶을 연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삶의 길이를 길게 해본댔자 아직까지 영원히 살수 있는 삶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따라서 진정한 생명의 연장은 자기보다 강하고 건강하고 뛰어난 후손을 만드는데,후손을 보다 생명에 가치로운 존재로 드높 이는데 있었습니다.이를 위해생명은 경쟁 원리를 도입했습니다.적자생존만이 가능한 자연계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하고 헤쳐가는 뛰어난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보통 성교중에는 5억개가 넘는 정자가 질 속에 사정됩 니다.그중에 많은 수는 질 밖으로 흘러나오고 2천개 정도만이 살아 남아 자궁 경부를 통해 자궁 안으로들어가 나팔관에 도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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