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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2500명 목숨 구한 ‘폴란드의 쉰들러’잠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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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로부터 유대인 어린이 2500명의 목숨을 구한 ‘폴란드의 쉰들러’ 이레나 센들러(사진) 할머니가 12일(현지시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군은 바르샤바에 거주하던 유대인을 색출해 아이·어른 구분 없이 모두 강제수용소에 격리했다. 당시 바르샤바 시청의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던 센들러는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수용소 내에 장티푸스가 창궐하자 위생검사를 빌미로 2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 어린이들을 탈출시켰다. 수용소를 빠져나온 어린이 2500여 명은 이름을 바꿔 폴란드인 가정과 고아원·병원·수녀원 등에 맡겨 학살을 피했다.

센들러는 유대인 아이들이 언젠가는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이들의 본명을 적은 명단을 집에 감춰 뒀다. 43년 센들러가 나치 경찰에 체포되자 동료 한 명이 명단을 숨겼다. 악명 높은 파위아크 감옥으로 연행된 센들러는 게슈타포의 모진 고문을 수차례 받았으나 동료와 어린이의 신원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폴란드 저항세력의 노력으로 감옥을 탈출한 센들러는 비밀 명단을 항아리에 넣어 친구의 집 마당에 있는 사과나무 밑에 묻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와는 달리 센들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왔다. 지난해 뒤늦게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폴란드 의회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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