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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영재교육은 입시용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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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달 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서울과학고를 과학영재학교로 지정 전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6개 부처 합동으로 ‘제2차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해 영재교육 수혜자를 현재 약 4만 명(0.6%)에서 7만 명(1%)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발맞추어 각 시·도교육청과 지자체는 영재교육 강화와 내실화 의지를 앞다퉈 천명하고 있다. 지난해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에는 약 20만 명 넘는 학생이 응시했다.

사람들이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알아주고 정부와 지자체가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주는 일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올바른 목적의 설정이다. 대부분 학부모들의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은 자녀의 대학 진학과 관련 있다. 명문대 진학에 뜻을 품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마는 이러한 목적은 자칫 영재교육을 입시교육으로 왜곡 활용할 소지가 있다. 수단이 목적을 앞서다 보니, 자녀가 영재여서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재교육기관에 입학시키기 위해 영재로 만드는 것이 영재교육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실제로 만연하고 있다.

흔히들 영재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또 국가 발전과 경쟁력 제고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영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먹고사는 일과 국가 경쟁력을 들이대면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 속에는 자칫 영재만이 가치 있다는 생각과 영재를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영재교육은 ‘영재만’ 중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재도’ 중요해서 하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영재 아이들이 보여주는 특별한 필요에 대응하는 교육적 관심에서 출발한다.

학교 안에는 같은 내용을 동일한 선생님에게서 배우지만 남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적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앞서 나가는 영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주어진 기본 학습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단계의 학습으로 나아가고 그 깊이를 더해 가고자 하는 욕구, 또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탐구해 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영재교육은 그동안 소홀히 하였던 이러한 아이들의 인지적이고 창의적인 욕구에 부합하는 교육적 처방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맞는 올바른 방법이 중요하다. 영재교육진흥법이 발효된 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사실상 불모지였다. 영재교육의 철학인 학습자의 다양성과 개인차에 대한 강조는 교육 현장을 모르는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는 이러한 차이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또 학생 개인차가 교육에서 인정될 때 영재를 포함한 모든 학생의 수월성이 극대화된다. 모든 학생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맥락 속에서 영재도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재에게 적합한 교육이 제공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소수 영재만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특혜적 형식보다는 모든 학습자의 다양성 존중 차원에서 영재교육도 보편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영재교육이 입시교육이나 소수 특혜교육으로 왜곡되지 않기 위해선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영재교육 대상자의 확대다. 영재를 포괄적으로 정의해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잠재력 발현의 기회를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둘째는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이 학업성취 수준에 좌우되는 지필검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영재성, 즉 학생의 미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교사의 종합적 판단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셋째는 영재 교육과정이 지식과 기능 중심이 아니라 사고력과 연구력, 창의적 문제해결력, 인성과 리더십 신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재 특성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교수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교사 양성과 지속적 연수 기회, 지원체제가 절실하다.

김미숙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