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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가 차베스, 전 부인엔 ‘꼼짝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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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금은 서로 거의 원수가 됐지만 한때는 단란한 시절도 있었다. 이혼하기 3년 전인 2000년 5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한 집회에 나온 우고 차베스 대통령<左>과 딸 로시네스, 전 부인 마리사벨 로드리게스. [카라카스 AP=연합뉴스]

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53)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독설과 배짱으로도 유명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 멕시코의 비센테 폭스 전 대통령을 ‘미국의 애완견’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11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의 정치적 후손’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메르켈이 남미 국가 지도자들에게 차베스와 거리를 두라고 말하자 이렇게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또 이날 자신이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을 지원해 왔다는 증거를 공개한 이웃나라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에게는 “거짓말쟁이”라면서 “베네수엘라와 전쟁을 하자는 의도”라고 공격했다.

이런 차베스에게도 꼼짝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전 부인 마리사벨 로드리게스(43)다. 차베스는 요즘 인플레이션과 콜롬비아와의 외교 분쟁으로 사면초가 상태지만, 그의 최대 골칫거리는 로드리게스라고 뉴욕 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로드리게스는 차베스의 두 번째 부인이다.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한 해 전인 1998년 그와 결혼했다가 2003년 6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후 침묵하던 로드리게스는 지난해 12월의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미국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차베스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다” “정치를 국민의 생활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차베스의 정권은 부패한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국민투표안이 부결되고 나서는 “차베스가 이미 권좌에 충분히 오래 있었다”며 “대통령 임기를 현재 6년에서 4년으로 축소하고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베스는 아직 독신으로 머물고 있지만, 로드리게스는 지난해 자신의 테니스 코치와 재혼했다. 그러면서 차베스와의 사이에서 난 딸 로시네스(10)와 함께 인구 100만 명의 바르퀴시메토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로드리게스의 잇따른 차베스 공격이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야당은 그를 바르퀴시메토시 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로드리게스는 현재 출마한 상태다.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 딸의 양육권을 놓고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차베스가 지난주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딸의 양육권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러나 로드리게스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는 “차베스를 지지하는 길거리 갱들로부터 언제든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나는 대통령에 의한 폭력과 괴롭힘, 그리고 박해의 희생양”이었다며 차베스를 공개 비난했다. 그러자 차베스는 11일 딸이 법적 다툼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양육권 소송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일단 백기를 들었지만, “앞으로 법정 밖에서 딸의 양육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로드리게스는 이에 대해 “이번 양육권 다툼 이전에도 차베스 정권이 조용히 있지 않으면 죽일 것이라고 여러 차례 살해 위협을 했다” “양육권 소송이 자신의 시장 출마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차베스가 로드리게스에게 꼼짝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로드리게스가 데리고 사는 자신의 딸이 언론의 주목을 끄는 것을 원치 않고, 다른 하나는 법정 다툼이 오히려 로드리게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준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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