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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험난한 동반자 관계’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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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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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설 듯하다 멀어지곤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얘기다.

여권 인사들에게 두 사람의 10일 회동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는 국면에서 이뤄진 만남이라 더 그랬다. ‘솔로 이명박’보다 ‘이명박+박근혜’라면 미국 쇠고기 파문으로 흔들리던 여권이 강해질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깨졌다. 민감한 현안이었던 복당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등 국정 운영에 시각 차만 노출했다. 회동 뒤 정치권에선 “험난한 동반자 관계” “신뢰에 더 금이 갔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두 사람은 두 차례 단독 면담했다. 대선 후 첫 양자회동(지난해 12월 29일)과 중국 특사 후 단독 회동(1월 23일)이었다. 당시는 총선을 앞둔 터라 공천이 최대 관심이었다. 회동 결과도 좋았다. ‘공정 공천’을 다짐하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박 전 대표가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3월 23일)고 주장하며 동반자 관계는 다시 금이 갔다.

두 사람은 왜 좀처럼 동반자로 서지 못하는 걸까.

정치권에는 “두 사람의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처음 대면한 건 퍼스트레이디와 건설사 간부로서다. 박 전 대표는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뒤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77년 현대건설 입사 12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당시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차례 얼굴을 익힐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취직이 어려웠던 이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한 일도 있다. 상황으로 보자면 이 대통령이 ‘을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금은 ‘내가 대통령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뒤 2002년까지 두 사람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 대통령은 전국구 의원(14대)으로 등원한 뒤 96년 15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종로)에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98년 2월 의원직을 내놨다. 반면 박 전 대표는 그해 4월 보궐선거(대구 달성군)를 통해 등원하는 바람에 서로 엇갈렸다.

두 사람은 곧 라이벌로 대면한다. 이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된 뒤 ‘청계천 신화’로 대선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역시 2004년 당 대표가 된 뒤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탄핵의 역풍에서 구했다.

2006년부터 진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다. 경선을 치르며 상처는 더 커졌다. 이 대통령은 당시 박 전 대표의 네거티브 공세에 큰 불쾌감을 표했다고 한다. 두 사람 주변의 인사들은 “너무 피 말리는 경선을 치렀다. 양쪽 다 마음이 심하게 다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그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를 ‘경선 싸움’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경선 과정을 거치며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았다는 상처가 있을 것이고, 박 전 대표에게도 이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불만이 쌓여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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