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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주말 산책] 부모가 된다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호 39면

『포즈 필로』(개마고원 펴냄)는 일상생활의 자잘한 아이템들을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유와 성찰로 풀어낸 철학 에세이 시리즈다. 그 열 번째 책, 티에리 타옹의 『예비 아빠의 철학』끝머리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윤리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삶에, 원칙과 도덕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발견하고는 한 친구가 혀를 차며 들려준 얘기를 떠올렸다.

친구가 일하는 부서에서 고급 식당에 손님을 초대한 자리였단다. 격조 있는 인테리어와 식기와 음식을 음미하며 화기애애하던 참에 신발 한 짝이 날아와 손님의 고기접시에 떨어졌다. 근처 테이블 주위를 깔깔거리며 뛰놀던 두 아이가 힘이 뻗쳐 벗어 던진 신발이 날아온 것이다. 다들 황당해하고 있는데, 애들 부모는 이쪽을 힐끔 일별할 뿐 묵묵히 식사를 계속하더란다. 내 친구는 울컥해 소스가 묻은 신발짝을 들고 성큼성큼 그 테이블로 가, 실은 그 부모가 더 미웠지만, 애들을 버럭 야단쳤단다. “그러고도 왜 잘못을 빌러 오지 않는 거니!” 그러자 아이 엄마의 무심하고 맹하던 눈이 또록또록해지면서 빛을 내쏘더란다.

“남의 애 기죽게 왜 그래요!” 21세기 초 한국의 전형적 소동이다. 거 참. 아이 기죽는 게 가장 큰 변괴인 듯 정신을 잃고 덤비는 젊은 엄마를 보면 기죽어 죽은 귀신이 붙은 것 같다. 그 여인은 외려 봉변이라도 당한 듯 분연히 일어나 제 남편에게 “당신이 상대해!” 외치더니 애들 손을 잡아 끌고 자리를 뜨더란다. 그 애들이 자라 제 엄마 같은 망종이나 쪼다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엄마를 창피하게 여길 텐데. 자기 자식이 최소한 남한테 욕은 안 먹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은 단지 좋은 부모 되는 법을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예비 아빠의 철학』은 저자가 첫 아이의 잉태를 알게 된 순간부터 아이가 8개월이 될 때까지의 기록인데, 아버지라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고찰과 철학적 육아일기로 구성돼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면 어지러웠다. 나는 매력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꼈다”에서 “이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들의 건강과 성장·미래에 관해서다. 내가 그토록 오래 질질 끌고 다니던 자의식과 자아는 지워졌으며, 나는 그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추구하던 지혜일지 모른다”로, 거기서 다시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아이를 갖는 방향으로 이끌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우리 작은 존재의 편협한 제약을 비집고 흘러 나가려는 일종의 생명력이다”로 이어지는 생리와 심리를 따라가며 나는 ‘흠,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이제 자신이 철학자로서의 그 어떤 성취보다 좋은 아빠가 되기를 더 원하는 것에 불안과 더불어 해방감을 느끼며 글을 맺는다.

내 친애하는 젊은 친구가 첫 아기를 가졌다. 회사 근처로 찾아가 같이 냉면을 먹은 뒤 『예비 아빠의 철학』을 건네자 그녀는 해쓱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내 작은 선물을 들여다봤다. 그녀 역시 지금은 자기 존재의 변모에 매혹과 더불어 얼마쯤은 혐오감을 느끼는 단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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