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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의 역풍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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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28면

미국의 금리 인하 마무리 이후 글로벌 증시 흐름을 진단함에 있어 오류가 있었음을 독자 여러분께 고백한다. 기자는 본 ‘마켓워치’ 칼럼을 통해 당분간 주가 흐름이 좋을 것이란 근거를 세 가지로 들었다. ①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글로벌 신용경색이 최악의 국면을 벗어난 점 ②글로벌 기업들이 잘 버티며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점 ③미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원유 등 국제 원자재값이 고개를 숙일 것이란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중 세 번째 진단, 즉 원유 값 안정으로 인플레이션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지난달 말 금리 조정을 전후해 배럴당 120달러 선에서 꺾이는 듯했던 국제 유가는 9일 126달러까지 올라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가 안정의 전제였던 미 달러화의 강세 반전도 불투명해졌다.
상황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국제 유가가 150달러를 넘어 머지않아 200달러까지 치달을 것이란 흉흉한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인플레가 세계 경제의 중대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다”며 “오일쇼크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증시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무엇이 문제였나. 먼저 FRB로부터 금리 인하 바통을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유럽중앙은행(ECB)이 딴소리를 냈다. ECB는 지난 8일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인플레를 참아내기보다 (경제) 성장 위축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당분간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만 금리를 잔뜩 내려놓은 상황에서 EU가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하자 ‘달러 약세-유로 강세’ 현상이 재연됐고, 이는 달러화로 결제되는 원유시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원유 공급의 문제도 노출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주 “원유시장에 물량 품귀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유가 상승의 원인을 약달러와 투기세력의 탓으로 돌렸다. 과거 같으면 미국의 눈치를 보며 공급량을 늘릴 법도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애처로운 공급 확대 요구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국제 핫머니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투기성 자금의 원유시장 유입이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유가는 결국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급락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유가의 ‘자기파괴적’ 속성 때문이다. 유가가 지금처럼 계속 올라 150달러, 200달러에 이르면 글로벌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고물가)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면 수요가 위축돼 유가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오일쇼크의 종말이 그랬다. 올 들어 국제 원유의 수요량은 하루 평균 3500만 배럴대에서 이미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도 비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일단 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서면 증시도 온전할 리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공조와 협력, 시장 참여자들의 합리적 선택으로 유가가 적정한 선에서 안정되길 바랄 따름이다. 아무튼 당분간 글로벌 증시는 유가 흐름에 따라 울고 웃는 나날을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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