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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대접…美 편향 외교 벗어나 중국 공들이기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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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11면

중국 황제가 왔어도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까. 9일 오전 10시30분 도쿄 시내 최고급 호텔인 뉴오타니에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나타났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해 이 호텔에 3박4일간 투숙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배웅하기 위해 일왕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국빈 방문에 대한 왕실의 의전이지만 흔치 않은 광경이다.

후진타오 닷새간 방일과 중·일 정상회담 결산

이틀 전 왕궁 연회장인 호메이덴(豊明殿) 만찬에서도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프랑스 코스 요리에는 최고의 진미로 꼽히는 제비집 콩소메 수프로 시작해 농어찜, 양(羊) 뒷다리 구이가 나왔다. 반주로는 왕실 지하 와인 셀러에서 엄선한 1996년산 퓔리니 몽라셰(화이트)와 90년산 샤토 라투르(레드)가 선보였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두 차례 베푼 만찬도 파격적이었다. 아무리 국빈 방문이라도 정상 만찬은 외교 의전상 한 차례만 하는 게 일반적이다. 도착 첫날인 6일 저녁 히비야(日比谷)공원 안의 양식당 마쓰모토로(松本樓)에서 비공식으로 진행된 1차 만찬은 장소 선정부터 각별했다. 이곳은 중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이 일본 망명 중 자주 찾던 곳으로 중국인에겐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슴이 뭉클한 역사적인 장소다.

방일 사흘째인 8일 아침 나카소네 야스히로·모리 요시로·가이후 도시키·아베 신조 등 역대 총리 4명이 한꺼번에 후 주석을 영접했다. 미국 대통령 방일 때도 이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재임 중 해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해 심각한 마찰을 빚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이 이렇게 각별히 후 주석을 대접한 데는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배경이 작용했다. 복잡한 사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 주석에게 권좌를 물려준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98년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5박6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찾은 장 주석은 방일 기간 내내 일본의 과거 잘못을 공박하고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일본으로선 까다로운 손님을 어렵게 모셨더니 잔소리만 듣는 형국이었다.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일본은 마지못해 ‘통절(痛切)한 반성’을 공동성명에 명기하고 중국이 요구해온 ‘사죄’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구두로 표명했다. 양국은 30여 개 항목으로 된 공동성명을 도출했으나 서로 불편한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결국 서명을 하지 않았다. 장 주석이 돌아간 뒤 중·일 관계는 급랭했고 2001년 보수 우파 성향의 고이즈미 총리가 등장하면서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일본에서는 올 초 발생한 중국산 만두 농약 사건 때문에 중국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증폭돼 있다. 중국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놓고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역시 자위대의 활동 범위 확대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제9조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일본을 불신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은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정상회담을 열었다. 화해의 손짓은 일본이 먼저 내밀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06년 9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미국 대신 중국으로 달려가 후 주석에게 ‘전략적 호혜 관계’를 제안했다. 적대시해오던 양국 관계를 모든 분야에서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자는 파격적 내용이었다.

후 주석은 ‘난춘지려(暖春之旅·따뜻한 봄맞이 나들이)’라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이번에 가는 곳마다 ‘일본이 전후 세계 평화 안정과 번영에 큰 공헌을 했다’며 일본인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대신 그는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하도록 지지를 호소했고, 일본 기업들이 중국 진출과 투자를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동성명도 전체 14개 항목 중 11개 항목이 경제·환경 분야로 채워졌다.

21세기 들어 처음 체결된 중·일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은 실용을 지향하면서 일본과의 전략적 동반자의 길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중·일 양국은 7월 홋카이도에서 열릴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에 후 주석이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편향 외교를 해온 일본이 중국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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