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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0%가 여성… 무관심 깨고 적극 가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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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06면

강기갑 의원이 불을 질렀다

‘광우병 ’사이버 여론 이렇게 움직였다

‘쇠고기 협상’ 관련 기사가 최다 댓글 20위 안에 처음으로 들어온 날은 지난달 15일이었다. ‘정상회담 조공 바치기 식 쇠고기 협상’이란 제목의 기사가 8위를 차지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정부가 4·9 총선이 끝난 직후인 11일부터 한·미 고위급 쇠고기 협상을 은밀히 재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강 의원은 “협상 과정 자체도 문제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 건강과 생명을 (한·미 FTA의) 희생 제물로 삼는 조공 바치기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네티즌이 압도적으로 관심을 보인 뉴스는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뉴타운 공약이 공약(空約)에 그쳤다’는 기사였다.

이명박

강 의원 주장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안전성보다 협상 과정과 이에 따른 실익을 따지는 여론이 우세했다. 이 기사는 50대와 남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봤다.

댓글 수는 439개였다. 이 중 협상 반대 성향의 댓글이 많았지만 쇠고기 협상을 지지하는 글도 60여 개에 달했다. 협상 지지자들은 ^값싼 쇠고기 맛보자 ^무조건적 반대 아닌 대책을 원한다 ^순혈주의를 벗어나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푸른하늘’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강 의원이 그간 협상 자체를 반대해와 속전속결로 대충 협상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미 FTA를 빨리 인준했다면 미국에 도리어 압력을 가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협상 타결 전해지면서 관심 급반등

4월 18일 정상회담을 11시간 앞두고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자 관심이 급반등했다. ‘설마’ 하던 민심이 ‘감시의 눈’을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18일 쇠고기 관련 기사의 순위는 2·4·5·13·16위를 차지했다. 17일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됐지만 이 뉴스는 1위와 3위에 그쳤을 뿐이다. 친박연대 양정례 비례대표 당선자의 공천 과정 수사, 0교시 부활 등 초·중·고 자율화 조치 등도 묻혔다.

급기야 19일에는 처음으로 쇠고기 관련 기사가 댓글 순위 1위로 뛰어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도의 논점은 중립적이었다. ‘호주산의 반값, 값싼 소고기 들어오나’ vs ‘축산농가 대책 있나’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민변과 녹색소비자연대 등이 검역 주권을 외쳤다는 보도가 간혹 눈에 띄었지만 정인교(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광우병에 대한 우려는 반미적 시각”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광우병 논란’을 다룬 기사가 처음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아 과학적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한 신문사의 ‘30개월 이상 된 뼈 있는 쇠고기, 광우병 걱정 안 해도 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으로부터 광우병 통제 국가라고 인정받았지만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30개월 연령 제한 철폐는 너무 성급하다는 일부 교수의 의견이 담겨 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대목도 들어 있었다.

이 기사에는 40대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가운데 211개의 댓글 중 11개가 쇠고기 수입에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한국 소도 안전하지는 않다 ^미국 사람도 다 먹는데, 위험하면 안 사먹으면 된다. ^미국 검역을 믿는다는 식의 찬성 의견도 많았다. 반대 의견 중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은 211개 중 3개에 그쳤다. 하지만 대다수는 청와대와 국회가 먼저 시범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댓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론이 잦아들 만하면 대통령이 민심과 어긋난 발언으로 여론의 불씨를 댕겨 댓글 1위 기사에 올랐다.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일본에 머물던 이 대통령이 22일 처음으로 “손해 볼 낙농업자는 소수지만 도시민은 좋은 고기 먹게 된다”고 말한 기사가 3일 만에 1위권에 올랐다. 24일에도 배우 최민수씨의 노인 폭행 사건을 제치고 다시 1위가 된다.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쇠고기 협상은 졸속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에 세워놓았던 조건이 성취됐기 때문에 합의한 것”이라는 발언이 문제였다.

24일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로 인해 청와대의 ‘강부자’ 여론이 다시 지펴지면서 25일 쇠고기 관련 기사는 순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땅 투기 의혹이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됐다.

‘PD수첩’ 10대에 큰 영향

2일은 댓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날이다. 1일(4872건)보다 6.5배나 증가했다. 26일 이 대통령은 처음으로 한우 농가를 방문해 “학교 급식에 한우 납품을 검토하겠다”며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27일 “앞서가는 축산농가는 개방해도 문제없다고 하더라. 쇠고기 개방 다음은 소비자 몫”이라고 발언해 역풍을 맞았다.

정부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광우병 공포 여론을 무시하자 27일부터는 주로 광우병과 관련된 해설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친 소 수입하나 vs 과장하지 말라’ ‘혹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가…설렁탕·갈비탕 기피 현상’ ‘美 쇠고기 개방에 광우병 불안 우려’ 등 모두 3건의 기사가 20위권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29일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공포감으로 찜찜했던 국민을 향해 “이 대통령의 한·미 쇠고기 협상은 노무현 대통령 때 하지 못한 것을 설거지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의문이 가중되는 가운데 29일 밤 방영된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또 다른 도화선이 됐다. PD수첩 내용을 보도한 이 기사는 10대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과 10대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이때부터다. 축산농가 대책을 고민했던 국민이 당장 쇠고기 수입을 자신과 아이들의 ‘생명’의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광우병 괴담’은 공포의 메시지를 띠면서 각종 동영상으로 10대 네티즌 사이를 넘나들었고 촛불집회의 참여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 탄핵 요구 서명운동’도 이날 40만 명을 돌파했다. 5월 1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된 ‘미 쇠고기 졸속 협상 무효화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에는 15만여 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이런 와중에 2일 ‘정부, 광우병 위험 물질 제거된 쇠고기는 안전’ 등 15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은 3만1822건까지 치솟으며 정점에 달했다. 19일 협상 타결 다음날의 총 댓글 4942건에 비해 6배나 많아진 것이다. 이날 발표에 찬성 글은 단 2건에 불과했다.

집회 사법처리 방침이 여론 자극

6일 처음으로 20개의 상위 댓글 뉴스가 모두 ‘쇠고기’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청와대와 정부의 여론 대처 능력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 여론은 온통 쇠고기 공포로 도배됐다. 5일은 미 농무부에서 쇠고기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는 또 7일 열리는 쇠고기 청문회에서 미국과의 협상 합의문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3일부터 이 문건은 인터넷을 통해 유출돼 정부에 대한 신뢰감을 더 떨어뜨리게 됐다. 2, 3일 연속해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 4일 경찰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히자 네티즌 1만4792명이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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