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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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각보를 돌려주자 정길례 여사는 민망한 듯 웃었다.
『드리려고 가져간 건데….
저희 딸 아이가 취미로 만들고 있어요.』 연초록과 진초록 항라의 아름다운 배색이 돋보이는 그 꼼꼼한 솜씨의 임자가 정여사딸이라는 데 아리영은 놀랐다.
미혼이라 했다.집에서 어머니 대신 살림을 도맡다시피하며 「예비신부 연수(硏修)」를 한다는 소리에 서여사도 감탄했다.
『요즘 세상에 박물관에라도 모셔다 전시해야 할 아가씨군요.어머니께서 잘 가르치셨나봐요.』 『아니예요.제가 가르친 건 없고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요.』 갑자기 욕심이 나면서 아리영에겐 하나의 묘안이 떠올랐다.시동생 배필로 안성맞춤일 것같았다.
나이도 걸맞았다.남편의 하나 뿐인 동생 아내로 그녀를 맞아들인다면 정여사와 아버지는 인척간이 된다.딸의 시아주버니 장인과 비밀스런 관계는 맺 지 않을 것이 아닌가.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남편을 설득하여 우선 정여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버님도 모시고 갑시다.아버님이 초청해주셔야 권위가 서지 않겠소?』 결국 네사람이 호텔의 프라이빗 룸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정여사는 화려한 요기(妖氣)를 띠고 있었다.그다지 멋진 옷이나 값비싼 액세서리로 꾸민 것도 아닌데 특별난 여인처럼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녀의 개성이 워낙 강한 까닭인가 .
그것은 아리영 눈에 마성(魔性)으로 비쳤다.15세기나 16세기에 태어났더라면 어김없는 「마녀」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말수가 적었으나 남편은 신명이 나 많은 말을 했다.말주변이 없는 무뚝뚝한 저 남자를 저처럼 수다쟁이로 만드는 것부터가 마력으로 여겨졌다.
시동생과 정여사 딸을 맞선보게 하는데 합의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맞선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시동생은 좋아하는 눈치였으나 정여사 딸은 선뜻 응낙하지 않는 듯 했다.어떻든 사귀어 보게 할 일이다.첫눈에 뜻이 모아지는 맞선이 어디 흔한가.
두 젊은이를 만나게 할 궁리를 짜는데,아버지가 불러 서재로 올라갔다.
『이리 와 앉아라.』 아버지는 소파에 앉았다.
『…당분간 시골에 내려가 있을까 한다.』 아리영은 반사적으로아버지 얼굴을 살폈다.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같이 내려가자.너 혼자 여기 있을 순 없지 않겠어?』 아리영은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아버지는 정여사를 잊으려고 서울을 떠나 있기로 한 모양이다.아리영의 묘책이 맞아떨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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