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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럼>대통령 직속 통상협상 기구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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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말 힘겹게 타결된 韓美간 자동차협상의 뒷맛이 영 씁쓸하다.협상과정에서 대표단간의 불화(不和)로 협상에 큰 혼선을 가져왔다고 해 청와대가 그 진위(眞僞)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잡음의 발단은 외무부와 통상산업부간의 협상 주도권다툼이었다고 하니 여간개탄스러운 일이 아니다.
행정부처간의 소관내지 주도권싸움은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나라를막론하고 있게 마련이다.일본의 경우 각 省간의 영역다툼이 심하고,미국에서도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의 마찰이 잦은 편이다.그러나 이들 국가는 내부의 갈등을 국익(國 益)과 관련된대외문제에까지는 연장시키지 않는다.그 점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대외협상이 끝난 뒤 대표단간에 손발이 안맞아 잡음이 생기는것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이를테면 지난 80년대초 韓-대만 각료회담때의 일이다.대표단에 참여했던 한 자동차(버스)업계대표가 버스쿼터를 한대도 따오지 못한데 불만을 품고 『회담은 뒷전이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아무 성과도 없었다』는 내용의전문을 당시 경제기획원.상공부등 관련부처 기자실에 보내 협상대표단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도 있었다.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판명됐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었다.지난 87~88년 막판에 몰렸던국내의 쌀시장 개방문제와 관련,경제기획원.농림수산부등 관련부처간의 갈등도 심각했었다.그런 고질병이 이번 자동차협상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대외협상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등 선진국들은 늘 같은 목소리를낸다.사람마다 말이 다른 우리 대표단과는 다르다.일본은 대외협상에 나서기 전에 부처간 이견을 조정한 다음 똑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우리는 대외협상에 임하는 자세에도 문제가 많다.상대국은 언제나 같은 창구인데 반해 우리는 협상때마다 대표가 바뀌는 경우가 잦다.그럴 수밖에 없다.대외경제업무조직이 빈번히 바뀌기 때문이다.부처간 업무영역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고 중복 되는 경우가 많아 잦은 마찰을 빚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에 대한 시장 개방압력의 파고(波高)는 더욱 거세지고 첨예화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미국은 그들 산업의 구조적경쟁력 약화는 인정하지 않은채 상대국의 불공정무역을 빌미로 시장개방의 공세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한국에 대해 선 경제현실을감안하지 않고 미국과 동등한 시장개방 압력을 계속 요구할 것이분명하다.더욱이 우리는 미국에 대한 안보(安保)의존이 심하기 때문에 그들의 압력에 대응하기가 버거운 입장에 있다.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조직과 자세로는 안된다.통합적인 의사결정과 교섭을 진행시킬 수 있는 일원화된 채널이 구축돼야만 한다.
그 대안으로는 역시 대외통상관계를 전담할 새로운 기구를 만들필요가 있다.정부도 지금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재정경제원 안에통상협력관을 두어 각 부처로 분산돼 있는 통상관계지원업무를 통합운영할 모양인데 그것으론 부족하다.2~3급의 협력관으로 각부처의 이견을 조정한다는 것은 무리다.그보다는 대통령 직속기구로두어 운영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우리나라의 경우모든 정책조정의 최후보루가 청와대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관련부처의 통상관계 베테랑 을 이 기구에 보내 통상전문가로육성하고 이들에게 특별인센티브를 주어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전담기구 설치에도 고려해야 할 일이 있다.5共때 만들었다가 부작용이 많아 폐지된 해외협력위원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 위원회는 대외문제에 관한 통합.조정업무보다는 타부처위에 군림하거나 타부처의 고유업무를 침해하는 사례가 많아 각부처와의 마찰이 잦아 말이 많았다.본연의 조정기능은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각부처에 시어머니 노릇만 하려고 했으니 잡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통상전담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이 기구는 대외통상문제에관한 각 부처의 의견을 통합.조정하는 역할에 비중을 두면서 일관된 통상전략을 펼쳐나가야만 할 것이다.날로 거세지는 통상파고를 헤쳐나가는 길은 앞으로 이 기구를 어떻게 잘 운영해가느냐에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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