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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신 밀월시대<2> 양국 정상, 과거사 언급 없이 “경제 협력”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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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과 일본이 환경과 경제 분야에서의 협력을 중심으로 밀월 관계를 구체화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7일 합의한 14개 사항 가운데 문화 교류·영사 협정 등 세 항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환경과 경제 분야에 관한 것이다. 반면 일본의 침략 역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언급이 없었다. 갈수록 강화되는 자위대 활동에 대한 중국의 우려 표명도 없었다. 양국이 정치보다는 철저하게 경제 중심의 실용외교로 전환한 것을 의미한다.

양국이 앞으로 가장 실질적으로 국익을 챙길 수 있는 공통분모는 환경과 경제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중국이 2006년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고돼 왔다. 시즈오카(靜岡)현립대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교수는 “두 나라가 경제와 환경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공동 성명은 앞으로 5~10년간 서로를 더욱 묶어 놓기 때문에 양국 협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동 성명의 세부 항목은 모두 양국 장관들이 서명했기 때문에 구속력을 가진다. 특히 환경 분야에선 일본 고베(神戶)시와 중국 톈진(天津)시가 에너지 절약, 환경 보호 협력 모델 도시를 구축하기로 한 점이 가장 주목되고 있다. 고베는 지난 30년간 쓰레기를 바다에 매립하면서 관련 기술을 대거 축적했다. 톈진시는 또 기타큐슈(北九州)시와는 순환형 도시 건설 협력을 체결해 환경 보호의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받게 됐다. 반면 일본은 공해가 심각한 톈진시에 첨단 환경·에너지 절약 기술을 제공해 일본 환경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발판을 굳힌다는 전략이다. 양국 간 환경 협력 도시 모델은 한·일 간에도 거론되던 이슈였다. 그런데 중·일이 먼저 이 분야에서 손을 잡음으로써 한국은 동북아 환경 기술 협력에서 뒤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은 중국의 물 부족과 수질 오염을 해소하는 기술, 하천 범람 방지 기술도 환경 협력 차원에서 제공한다. 중국은 해마다 태풍이 몰아치면 논밭이 침수되고 대형 인명 사고를 내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첨단 기술을 들여와 만성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양국은 배수처리 기술과 오염물질 배출 삭감 기술도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후 주석은 포괄적으로 환경 분야의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받는 대가로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2013년 이후의 포스트 교토의정서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이 구체적인 협력 관계를 맺지 못한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은 ‘미니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협력 관계를 약속했다. 우선 두 나라는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상대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일관 지원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일본 중소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 중국은 사전 정보 제공부터 시장 개척 지원은 물론 중소기업단지 설립, 진출 후 문제 해결까지 지원한다. 양국은 특히 중소기업 정책 교류를 강화해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과 기업 활동 환경을 정비하기로 했다.

이처럼 양국이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 위협론’에서 ‘중국 고객론’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는 일본의 시각 변화에서 비롯됐다. 상품 수출은 물론 관광·쇼핑에서도 중국인은 일본에 최대의 고객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2005년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운 ‘요오코소(어서 오세요) 일본’ 정책의 핵심 타깃도 중국인이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94만3400만 명이었다. 10년 내에 중국의 해외여행이 더욱 자유화되면 1000만 명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긴키(近畿)대 이지마 다카오 교수는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 일본도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됐다”고 밝혔다. 도쿄 긴자의 까르띠에·아르마니 등 명품점 관계자들도 “해외 관광객 중 중국인 고객이 가장 비싼 상품을 사 가고 있다”고 전했다. 후 주석이 방일 마지막 날인 10일 오사카(大阪)·고베 등 간사이(關西) 지역 경제계 인사들과의 회의에 참석하는 등 방일 일정을 ‘비즈니스 외교’로 마무리하는 것도 이번 방일이 경제 중심의 실용외교임을 입증하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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