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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전수자>14.북 만들기 맥잇는 이정기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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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동서를 막론하고 자고로 신물(神物)대접을 받아온 악기가 북이다.지금도 각종 제의나 굿판등에 북이 빠지는 법이 없지만 알타이족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여러 종족들은 북소리를 아예「신령의 말」로 여긴다.
이때문에 북메우기(북 만드는 일)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없다.쉽기로 치면 아무렇게나 나무통에 가죽등을 둘러싸고 두드려소리나는대로 북이라 이름지으면 그만이겠지만 「하늘에 통하는 소리」를 지어야 하니 오죽 어렵겠는가.
현재 파악되고 있는 우리 고유의 북 종류는 23가지로 이 가운데 실제로 쓰이고 있는 것은 10여가지 정도.
이같이 종류가 다양한 만큼 이를 만드는 고장(鼓匠)도 두터운층을 이루고 있었다.하지만 산업화과정을 겪으면서 고달프면서도 밥벌이와는 거리가 먼 북메우기가 외면당한데다 서양문물에 휩쓸려전통 고장의 수도 급격히 줄어 맥이 끊어질 지 경에까지 이르렀다. 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 전수조교인 이정기(李廷耆.38)씨는 불과 몇손가락으로 세어야할만큼 귀한 전통 고장의 한사람이다. 80년9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북메우기 제1호 기능보유자이자 스승인 故 박균석(朴均錫.89년 작고)선생에 이어 2대째인 李씨가 북메우기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74년부터.중학을마친 뒤 가정형편상 일자리를 찾던중 친구의 소개로 무악 재밑 朴선생의 북공방에 들렀다가 이내 내제자가 됐다.
공방에서 먹고 자면서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5년쯤 지나서야 나름대로 북의 형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전수조교로 인정받은 것은 88년8월.
북메우기 공정은 크게 나무일과 가죽일 두 분야로 이루어진다.
주재료인 소나무를 골라 적당히 건조한 뒤 17~20쪽의 판재를 돌려붙여 북통을 만들고 그 양쪽에 잘 손질된 쇠가죽을 매는일이다. 그러나 실제 공정을 따지자면 2백여단계나 될 정도로 일일이 손을 타는,지겨울 정도로 까다롭고 고된 작업이다.북통의경우 크기에 따라 곡률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선 판재쪽의 옆면을빗쪽매로 깎아야하는데 보통 눈썰미가 필요한 것이 아니 다.가죽일도 4~5살된 황소가죽을 골라 전통기법으로 무두질한 뒤 북의종류에 따라 부위별로 골라써야 한다.
특히 공정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북메우기(통에 가죽을 붙이는 일)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어서 아무리 숙련돼 있다손 치더라도 「소리에 대한 감」이 없이는 절대로 이뤄낼 수없는 장인만의 고유 영역이다.
『북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걸맞은 소리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지어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 10년쯤 지나자 좀 감이 잡히는 듯 했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점점 더 모를 것같습니다.』 북은 북통의 지름(鼓鳴徑)크기에 따라 대(4자이상).중(2~4자).소(2자이하)로 나뉘는데 한달에 20~30개의 각종 북을 메우는 李씨는 스승이 소백산 구인사로부터 생전에 주문만 받아놓고 이루지 못한 여섯자짜리 법고를만든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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