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욕은 뉴욕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호 12면

『뉴욕 스케치』장 자크 상페 지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펴냄.『뉴요커』박상미 지음, 마음산책 펴냄.『뉴욕의 역사』프랑수아 베유 지음, 문신원 옮김, 궁리 펴냄.『오 헨리 단편선』O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이레 펴냄.

뉴욕 생활을 다년간 경험한 지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뉴욕이 뭔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지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지. 뉴욕은 뉴욕이야.” 우문현답인지 현문우답인지는 잘 몰라도 그럴듯하다. 뉴욕은 뉴욕이다.

‘꼬마 니콜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장 자크 상페는 특유의 화풍으로 뉴욕을 그려낸 『뉴욕 스케치』(열린책들)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뉴욕에서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하네. 수도 없이 전화를 한 끝에 열리게 된 디너파티라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프로그램쯤은 당연히 마련되어 있어야만 하는 거야.

문 앞에 도착하게 되면 기쁨에 겨운 환호성을 질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탄성도 연발해야만 하네. 그래야 그날 파티가 살아난다는 거지.” 프랑스 사람 상페가 본 뉴요커의 특징은 이렇다. 뉴욕 여성들은 가정 바깥에서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면서 자기실현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뉴욕 사람들의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은 작별인사와 동의어다. 뉴욕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감탄하며 긍정하는 말투를 구사한다. 뉴욕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것을 추구하며 무엇이든 늘 발전에 골몰한다.

현대 예술의 수도로도 일컬어지는 뉴욕에서 작품 활동 중인 젊은 우리 예술가가 본 뉴욕은 어떨까? 뉴욕의 구석구석과 뉴욕 사람들, 그리고 뉴욕의 예술가들을 사진과 함께 담은 도시 에세이 『뉴요커』(마음산책)에서 박상미는 뉴요커에게 들은 뉴요커의 세 부류를 이렇게 전한다. 뉴욕에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뉴요커, 다른 곳에 살면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통근 뉴요커, 그리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뉴욕으로 온 정착 뉴요커.

통근 뉴요커는 뉴욕에 끊임없는 흐름을, 토박이 뉴요커는 견고한 토대와 연속성을, 정착 뉴요커는 열정을 가져다준다. 이런 다양한 뉴요커가 자아내는 뉴욕의 무늬를 박상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빌딩 뒤에 두 개의 빌딩이 겹쳐 있고 그 각각의 뒤에는 또 다른 빌딩이 겹쳐 있다. 겹겹이 들어선 빌딩 숲 앞에는 또 공원이 겹쳐 있다. 백만장자가 지나간 자리에 거지가 누워 있고, 형광등 불빛이 사나운 대형 상점 옆에는 주인의 땀 냄새가 진동하는 구멍가게가 있다. 어지러운 겹침 속에서 뭔가를 찾아나가야 하는 삶이 뉴욕의 삶이고 뉴요커의 숙명이다.”

뉴요커의 숙명이 그렇다면 도시 뉴욕의 숙명, 아니 그 역사는 어떨까? 프랑수아 베유의 『뉴욕의 역사』(궁리)를 읽어볼 일이다. 네덜란드인이 상업망을 확장하기 위해 사실상 사기를 쳐 단돈 24달러를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주고 산 오늘날의 맨해튼, 당시의 뉴암스테르담이 뉴욕 역사의 시작이었으니 때는 1624년이다.

그러나 오늘날 뉴욕의 본격적인 원형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새로운 약속의 땅에 환호했던 전 세계 이민자들이 다양성의 용광로를 일구어 내기 시작했던 것. 여기에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이주한 정상급 예술가·학자·사상가들을 통해 뉴욕을 예술과 학문과 사상의 용광로로 재탄생시켰다. 뉴욕의 뉴욕 됨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뉴욕이 획득한 현대성은 몽환적인 도시 풍경보다 물리적 성장과 사회·정치적 발전 사이에서 영원한 긴장을 타협해 나가는 방법에 있으며, 그러한 타협은 모든 뉴욕인의 다원적이고 진보주의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니 뉴욕 사람이 쓴 뉴욕 이야기가 빠졌다. 뉴욕 없는 그도, 그 없는 뉴욕도 생각하기 힘든 작가 오 헨리가 있다. 그의 작품 속 19세기 말~20세기 초 뉴욕 사람들은 오늘날 모든 도시인의 자화상이다. 진부하기까지 한 평범한 일상에서 제각각 꿈을 피워 올리다가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감동하는 지난 세기 초 뉴욕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김욱동 번역의 『오 헨리 단편선』(이레)을 다시 펼쳐 읽어본다. 마지막으로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덧붙여 보자. “모든 견고한 것은 뉴욕에서 녹아버린다.”


출판평론가·도서평론가·번역가·저술가 등 다채로운 직함을 가진 표정훈씨는『탐서주의자의 책』『나의 천년』등을 펴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