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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그렇다면 왜 회임치 못하는가.
혹시 첫 아이를 인공유산시킨 데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첫번 임신때 유산시킨 후로는 영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이꽤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임(不姙)의 원인은 여러가집니다.배란(排卵)이 안되는 경우,염증으로 나팔관이 막혀버린경우,자궁 내막의 일부가 자궁 밖에 흩어진 경우,자궁에 혹이 생긴 경우,인공유산때 자궁 내벽을 지나치게 긁어낸 경우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 런 하자가 전혀 없는데 임신 못하는 여성이상당수 있어요.특히 초임(初姙)때 인공유산한 여성 가운데 그런분이 많습니다.
원인 불명의 불임 여성 수효는 전체 불임 여성중 10%에서 15%나 됩니다.김여사님도 그중 한분이신 셈이지요.』 『원인 불명?어디에건 문제되는 데가 있으니 그런 것일 텐데요.』 아리영은 답답했다.
『글쎄 말입니다.현대의학의 수준이 아직까진 그 정도인가 봅니다.생식의학이 눈에 띄게 발달되기 시작한 것도 고작해야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니까요.』 고박사는 남의 이야기하듯 하다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했다.
『정말 신비로운 것,불가사의한 것이 생명의 탄생이지요.』 아이 갖는 문제로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아리영은 상실감.낙오감으로 온몸이 나른해지곤 했다.이젠 병원출입을 하지 않기로 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그렇게 생각하면서 흠칫 놀랐다.올 겨울엔히아신스 알뿌리를 재배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 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 해마다 빠짐없이 가꾸어왔던 것인데…. 2층 아버지 서재로 뛰어 올라가 창문턱에 가지런히 놓인 유리 장식품을 훑어보았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어머니는 유리 공예품 한가지씩을 사 모았다.그 중에 히아신스 꽃바구니 모양의 장식품이 있었다.
유리 히야신스라도 놓고 봐야지.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대신 연밥 모양의 식탁종을들고 내려왔다.영롱한 소리가 연씨처럼 쏟아지는 이 연녹색 유리종은 히아신스 꽃장식과 함께 베니스에서 산 것이다.베니스는 물의 도시인 동시에 유리의 고장이다.어머니는 아리 영의 손목을 잡고 생 마르코 광장 앞 골목의 유리제품 가게를 누볐다.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색색가지 유리그릇.유리장식들이 가게머리마다 즐비했다.「베네시안 글라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베니스의 명산품들이다.
맑은 것,화사한 것,눈부신 것,섬세한 것,깨지기 쉬운 것,그래서 더욱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어머니는 유리에 집착했다.
아리영으로서는 그 섬약한 불임성이 못내 불안하기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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