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이상 80%문맹(44년)총인구 27%극빈자(3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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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제(日帝)강점 당시 한국인들의 「고통지수」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21일 통계청이 조선총독부.식산(殖産)은행등의 자료를토대로 펴낸 『광복이전의 경제.사회상』은 당시 한국인들이 경제.사회.보건.교육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차별 받았음을 숫자로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수탈이 심해 일제 강점 이후 만주로 떠난 사람이 1백51만명(42년),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된 사람이 1백52만명(36년),국내거주 극빈자가 5백42만명(31년)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분야에서 억눌린 삶을 살던 한국인의 「식민지 인생」을 통계로 알아본다.
◇4명중 1명은 극빈자=31년 당시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영세민과 걸인이 5백42만명으로 총인구의 26.7%에 달했다.5년전인 26년에 비해 2.5배 이상 늘어난 숫자였다.
◇교육은 일본인 중심=44년 12세 이상 한국인의 79.8%가 한글이나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한반도내 일본인중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은 3.8%뿐이었다.
◇땅부자도 일본인=42년 당시 한국인 지주 1인당 평균 땅 보유 면적은 1정보였으나 일본인 지주의 경우 3.6정보나 됐다.일본인 지주수는 전체(地稅 납부자 4백5만8천명 기준)의 2.9%에 불과했으나 이들이 소유한 땅은 한반도 토 지 전체의 9.5%에 달했다.
◇농사 짓고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28년 쌀생산량은 1천7백30만섬으로 20년에 비해 36.1%나 늘었다.그러나 한국인 1인당 쌀소비량은 28년 年0.525섬으로 20년(0.625섬)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일본인의 쌀소비량은 年1 .2섬으로 변함없었다.
◇한국인은 블루칼라,일본인은 화이트칼라=40년 한국인 취업자의 72.9%는 농림축산업,4.7%가 탄광 및 공장,1.6%가어업 및 염전에서 일하는등 대부분이 단순노동자였다.반면 같은 해 일본인의 경우 공무원 및 자유직이 37.4% 에 달했고 상업.교통업도 27.7%나 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의 형편은 더 어려워 30년 당시 재일한인 42만명중 71.5%가 막일꾼이었다.
◇의료혜택도 부족=43년 이질.장티푸스.천연두등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의 치사율은 한국인이 14%인데 비해 일본인은 이보다훨씬 낮은 10.1%였다.38년만 해도 한국인의 치사율은 20.3%로 일본인(11.2%)에 비해 거의 두배나 높았다.
〈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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