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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두바이에서 이 대통령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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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셰이크 무하마드의 두바이 프로젝트는 1995년에 실권을 잡으면서 본격화했다. 현재 20%가 진행된 공사판이다. 부르즈 알 아랍 호텔은 높이 321m, 94년에 착공돼 99년에 완공되었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야심작이다. [사진=임진권 기자]

나는 지금 이 글을 두바이에서 쓰고 있습니다. 환상의 팜트리 인공섬 다리 위에서 세계에서 제일 비싼 7성급 호텔이라는 눈부시게 하얀 돛단배 형상의 부르즈 알 아랍 호텔을 바라보면서 문득 대통령 생각을 했습니다. 참 기묘했어요.

“젖줄이 끊기면 사라져버릴 두바이 우리 문명이 따를 모델은 아닙니다”

나는 스무 날 가까이 인류문명의 발원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인류문명의 시원이 나일강변의 이집트문명을 제외하면 모두 아시아대륙에 있습니다. 그중 황하문명이나 갠지스·인더스강문명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비근한 정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메소포타미아와 그에 인접한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그리고 지중해 동부 연안의 레반트(Levant) 지역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도 없습니다.

서구문명의 시원을 기껏해야 그레코·로만문명으로 보는 시각은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철학사도 희랍의 고전철학에서 출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희랍고문명의 물리적 모습이 그보다 자그마치 2000년을 앞선 이집트문명 앞에서 너무도 초라하게 보입니다. 희랍문명은 서구문명의 시원이 아니라, 시원의 말류에 불과합니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페니키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아카드, 수메르 등등의 찬란한 모습을 직시하게 되면 희랍고전철학이 이러한 고문명의 성취를 집약시킨 사유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우리가 서구문명의 시원을 그레코·로만으로 보는 것은 기독교문명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의 유일신관을 이념적 토대로 하여 부활의 계기로 삼았고, 그 로마문명이 헬레니즘 영향권 속에서 성립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레코·로만을 종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종주일 뿐이지 인류문명의 중추는 아닙니다.

나는 요번에 애마 부세팔로스를 탄 청년 알렉산더가 헬레니즘의 대제국을 건설하기 이전의 고문명들을 집중적으로 탐방했습니다. 코스모폴리스 이전의 폴리스들의 찬란한 모습은, 인간과 인간이 지어내는 문명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외경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는 아랍에미리트가 세계 제8대 불가사의라고 자부하는 또 하나의 사막 폴리스 두바이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고문명들의 폐허와 22세기에는 또 하나의 폐허로 남을 수도 있는 두바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 문명의 미래상이 결코 이러한 문명들의 진로를 밟을 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 문명들은 매우 현란한 모습을 지녔지만 아주 단순한 젖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오아시스)이 있고, 도로, 농경지, 방어적 입지가 보장되고 전제적 왕명이 있으면 사막에도 곧 신기루처럼 대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도시들은 지질 변화로 물만 없어져도 신기루처럼 네크로폴리스(죽음의 도시)가 되고 맙니다. 밖에서는 40도의 열기, 안에서는 20도 이하의 에어컨 바람에 시달려야 하는 이 완벽한 인위의 사막도시, 두바이에 세계의 검은돈과 벤처가들의 마지막 베팅의 로맨스가 모여든다 한들, 이 문명 모델은 결코 영화의 지속적 젖줄을 확보할 길이 없습니다.

저녁에 역사의 질감이 서린, 예술가들의 손때가 묻은 카페 하나를 찾아볼 길 없고, 변변한 대학이나 박물관 하나 없고, 더욱이 이런 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자체 교육재원이 부족한 이러한 두바이가 영속적으로 살아남을 길은 막막합니다. 우리는 두바이에서 장사를 잘해야 하지만 두바이를 우리 문명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문명들은 영화와 단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박한 삶일지언정 지속과 문명의 다원적, 입체적 생명원천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죠. 당신이 대운하 구상을 통해 경제대통령의 화려한 꿈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아니 믿고 있다면, 왜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대운하를 반대하고 있는지, 그 국민들의 함성에 담긴 천의(天意)를 한 번만이라도 깊게 숙고해 주시오. 국민들은 당신이 그러한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을 초월하는, 그러니까 두바이의 패러다임조차 뛰어넘는 새롭고도 영속적인 시의(時宜)를 제시해 줄 것을 원하고 있소.

오늘 두바이 선창가에서 어느 후배를 만나 당신 이야기를 했더니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라 어찌할 수 없는 시운”이라고 말하고 말더군요. 그러나 당신의 천운을 칭송한다 하더라도, 그 대권의 천운이 가난에 시달렸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야학에 나가 봉사하곤 했던 진솔한 이명박의 모습보다 더 위대한 운세를 당신에게 가져다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돛단배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데 1만5000달러 든다는데, 우리 국민은 경제타령은 할지언정, 오순도순 초가삼간에서 솜이불 덮고 화롯불을 끼고 숙면하는 하룻밤을 더 사랑할 수도 있소. 번쩍이는 이불 덮고 눈을 뜨니 1만5000달러? 글쎄올시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천운을 창출해 준 시운의 요청에 너무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를 뽑아준 국민에게 뭔가 확실한 것을 물리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것도 단시간 내에 화끈하게! 그 단시간의 화끈한 처방이 토목공사일 수는 없습니다. 조지 W 부시와 친근하게 쾌활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제스처를 쓸 수 있다면 동시에 김정일과도 악수를 하는 호방한 여백을 보여주어야만 당신은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실리는 다원적 전략과 추상적 지혜에서 얻어집니다. 대미동맹만큼은 한국은 유례없이 충실한 우방의 자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과도하게 미·일 일변도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일제 청산도 가치를 바르게 정립하자는 것뿐입니다. 인물을 증오하는 것이 될 수는 없겠죠. 모든 것을 혼동하지 말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십시오. 할 말은 너무도 많소.

우리는 문명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너무 다르오. 그러나 이 서생의 간언에 한 번이라도 충심의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더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고 확신하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미 와 있소. 안녕.

글=도올 김용옥 기자, 사진=임진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