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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정책 '수출이냐 물가냐'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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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승용차 10부제가 다시 등장할 정도로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다. 철강.곡물 할 것 없이 주요 원자재 값은 올 들어 다락같이 오르고 있다. 이로 인해 중앙은행은 당초 올해 물가 방어선(연 2.9%)을 이미 지키기 어렵게 됐다.

이런 가운데 재정경제부.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원화환율 급락 추세를 방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열흘새 원화환율이 달러당 20원 넘게 떨어졌는데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 이 정도면 시장에서 몇 번이고 달러 사재기에 나섰던 게 그간의 행태였다.

수출을 늘리려면 환율을 높게 유지해야 하지만,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 값이 치솟으면서 내수.물가가 위협받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외환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딜레마에 빠진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례적인 관망세=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1일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통과 직후 정정불안 심리로 1180원대로 치솟았다가 그 이후 열흘 동안 계속 떨어졌다.

환율이 꾸준히 떨어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국은행은 "엔화 강세에 따른 심리적 동반 강세 효과가 있는 데다 달러.원화 수급이 비교적 맞아떨어진 때문"으로 풀이했다. 지난 1, 2월 하루 5000억원이 넘는 외국인 주식 순매수 열기가 대통령 탄핵 이후 주춤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은행의 한 딜러는 "이 정도로 환율이 급락하면 몇 번이고 시장에 들어와 끌어올린 게 그간의 당국의 관행인데 최근 그런 움직임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의 윤여권 외화자금과장은 "환율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과 크게 차이가 나거나 환투기 세력이 들어와 급등락할 경우 미세조정에 나설 뿐이지 시장개입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럽.일본의 원자재 충격은 완만=환율이 떨어지면 수입 원자재 값이 떨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올 1분기에 올해 전체 경상흑자 전망치(60억달러)를 초과 달성할 정도로 호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환율을 높게 유지해 수출을 늘리는 효과와 환율을 적정 수준으로 가져가 원자재 수입부담을 덜고 물가상승 압력을 줄이는 효과의 득실을 따져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달러 표시 원유가격은 지난해 1월보다 20% 올랐지만 같은 기간 자국 유로통화가 강세였던 유럽지역은 유로 환산 유가가 2% 상승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일본도 같은 기간 엔화가치가 8.3% 오르면서 자국 통화 기준의 유가 상승률은 9%대에 머물렀다.

홍승일.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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