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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스키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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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겨울이 아쉽다.’ 완연한 봄날 무슨 ‘뒷북’인가 싶지만 실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바로 스키·스노보드 매니어들이다. 실내 스키돔이 있다지만 성에 안 찬다. 설질이나 스케일·분위기, 어느 모로 보나 ‘실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전 세계 열혈 스키어·스노보더들은 한곳으로 모여든다. 4월 말, 5월 초까지 겨울이 머무르는 곳. 바로 ‘유럽의 지붕’ 알프스다.

<프랑스 발디제르·샤모니> 글·사진=김한별 기자

알프스 산계는 넓다. 최고봉(4810m) 몽블랑을 필두로 봉우리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며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네 나라의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산이 깊으니 눈도 많다. 서쪽 사면 쪽이 특히 그렇다. 바로 프랑스 론-알프스 지역이다. 유럽 최다 겨울올림픽 개최지. 첫 대회를 포함해 세 번의 올림픽이 이 지역에서 열렸다. 단순히 눈만 많은 것도 아니다. 일찍부터 겨울 스포츠가 발달하다 보니 리조트 규모, 설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근 유럽 국가는 물론 로키산맥을 가진 미국·캐나다에서까지 사람이 몰려드는 건 그 때문이다.

2009 세계 알파인 스키대회장, 발디제르

발디제르는 론-알프스 160개 리조트 가운데 가장 높은 곳(1850m)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리산 반야봉(1752m)보다 훌쩍 높고 천왕봉(1915m)보다 조금 못하다. 그것도 리조트 가장 아래쪽에 있는 마을 고도가 그렇다. 가장 높은 슬로프 정상은 무려 해발 3456m다. 하나로 연결된 인근 티뉴 리조트와 합하면 슬로프 숫자가 총 154면(총연장 300㎞), 리프트 개수는 후니쿨라(산악열차)·곤돌라·케이블카를 합해 모두 89개다. 만년설로 뒤덮인 빙하지대도 리조트 내에 두 곳이나 있다. 눈은 겨우내 ‘쏟아 붓는다’. 최근 10년간 적설량이 한 해 평균 6m. 기자가 머무른 4월 19~21일에도 사흘 내내 함박눈이 왔다. 덕분에 이곳에선 11월부터 5월 초까지 ‘물리도록’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맘만 먹으면 빙하 위에서 한여름(7~9월) 스키도 가능하다. 스키어·스노보더들에겐 ‘꿈’같은 곳이다.

하늘도 땅도 흰색

가장 먼저 오른 곳은 해발 2827m의 로셰 드 벨르바흐드 산. 정면의 슬로프는 거의 ‘직벽’이다. 슬로프 중 최고 난도를 뜻하는 블랙 레벨. 2009년 세계스키연맹(FIS) 알파인 스키대회 남자부 경기가 열릴 곳이다. 언감생심 엄두가 안 난다. 뒤쪽으로 돌아 내려가는 오렌지 슬로프를 택했다. 그나마도 레드 레벨, 둘째 난도다. 발끝에 잔뜩 힘을 주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한번 달리기 시작하니 거침이 없다. 설질이 워낙 탁월한 덕이다. 좌우로 살짝살짝 에지를 잡으면 눈이 ‘사르락사르락’ 소리를 내며 안개가 되어 사라진다. 소위 파우더 스노. 플레이트를 통해 전해지는 감촉이 새털처럼 가볍고 보드랍다. 그런 눈이 슬로프 전체를 빈틈없이 덮고 있다,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얀, 순백(純白)의 설원. 그 위 스키를 타는 사람들 모습이 점점이 작은 티끌 같아 보인다.

슬로프를 다 내려오는 데 근 30분을 보냈다. 중간중간 멈춰 서 숨을 고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워낙 ‘긴’ 탓이다. 설질은 아래쪽으로 갈수록 안 좋아졌다. 아무리 알프스라지만 역시 봄은 봄. 특히 맨 아래쪽은 박하게 말해 슬러시(녹아 질척거리는 눈)에 가까웠다. 가이드 필립은 “눈이 끝물인 탓”이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후니쿨라를 타고 다시 로셰 드 벨르바흐드로 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코스를 바꿨다. 콜 드 프레세 넘어 이웃 티뉴 리조트로, 티뉴 리조트에서 다시 로셰 드 벨르바흐드와 로셰 드 샤르베 사이 협곡을 넘었다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시간. 고작 한나절 탔을 뿐인데 ‘체감 운동량’은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꼬박 하루 이상을 보낸 느낌이다.

‘오프로드’ 스키의 천국, 샤모니

발디제르에서 늦게까지 ‘일반’ 스키를 탈 수 있다면, 이맘때 샤모니(1035m)에선 ‘오프로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샤모니는 한국 단체관광객들에게 몽블랑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에귀 디 미디 전망대(3842m)로 유명한 곳. 케이블카로 왕복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맘때 프랑스 사람들은 에귀 디 미디에서 케이블카 대신 스키로 내려오길 더 즐긴다. 블랑슈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총연장 17㎞, 수직고도 2800m를 내려오는 코스다. 완주하는 데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규격화된 스키장은 아니지만, 그래서 한결 더 실감나는 ‘오프로드’ 스키, 공식 용어로는 오프피스트(off-piste, piste는 다져진 활강코스를 의미) 스키의 명소다. 한겨울에는 눈보라와 혹한 때문에 힘들고 거꾸로 이맘때가 제철이다. 하지만 뜨내기 관광객은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가파른 낭떠러지 절벽 위를 가야 하는 만큼 실력과 장비·경험 ‘3박자’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자칫 큰 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도 기본 스키장비 외에 자일과 아이젠 같은 등산장비를 함께 갖추고 5~6명이 한 조를 이뤄 도전한다.

오프피스트 스키가 부담스럽다면 안전한 ‘일반’ 스키장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샤모니에는 총 13개의 리조트가 있다. 초·중급자라면 ‘수퍼 샤모니’라고 불리는 플레제르, 급경사를 탈 수 있는 상급자라면 브레방 리조트가 적당하다. 1924년 제1회 겨울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Tip

■ 교통편=발디제르·샤모니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파리를 경유해 제네바·리옹 등으로 간 뒤 차편으로 이동해야 한다. 에어프랑스(www.airfrance.co.kr)가 가장 많은 항공편을 갖고 있다. 제네바에서 발디제르까지는 차로 약 3시간, 샤모니까지는 약 2시간 걸린다.

■ 리프트 이용=지역 내 모든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는 스키 패스가 있다. 에스파스 킬리(발디제르+티뉴) 당일 패스가 30.50(1유로=약 1550원)유로, 1주일짜리는 231유로다. 샤모니 패스는 하루짜리가 37유로, 1주일 패스는 209유로다. 모두 성인 기준 가격. 자기 장비를 가져가지 않은 사람은 인근 스키숍에서 렌털도 가능하다. 비용은 상급 기종 기준 하루 25유로, 1주일에 150유로 내외.

■ 숙박=스키 리조트 인근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비싼 편. 발디제르나 샤모니 모두 3성호텔 더블베드 기준 1박에 150~250유로 정도를 받는다.

■ 여행정보=프랑스관광청(kr.franceguide.com), 론-알프스지역관광청(www.rhonealpes-tourism.com), 발디제르 리조트(www.valdisere.com), 샤모니관광사무소(www.chamonix.com)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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