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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샤론, 지옥의 문을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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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을 사살했다. 이.팔 간 폭력이 격화될 게 확실하다. 중동 평화 로드맵이 이행될 가능성도 극히 작아졌다. 이라크 전쟁으로 더욱 악화된 반미감정에 이어 반이스라엘 감정까지 폭발하면서 중동지역 내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즉각 보복 천명=사건 직후 팔레스타인의 대부분 이슬람 사원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를 사용, "우리의 지도자 야신이 처참하게 사망했다"는 방송을 반복했다.

하마스의 간부인 이스마엘 하니야는 "샤론 총리가 지옥의 문을 열었다"며 "샤론 총리의 목을 칠 것이며 이스라엘의 모든 집과 거리에 죽음을 보낼 것"이라고 무차별한 보복공격을 다짐했다. 사지가 마비된 정신적 지도자의 비참한 사망으로 여러 조직의 과격 행동대원들도 무차별적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야신 사살의 시점이 문제다. 이집트 알아흐람 전략연구소의 이스라엘 전문가인 이마드 자드 박사는 "3월 들어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대공세로 50여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발생한 이번 사건은 과격단체들을 극단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드 박사는 "이미 여러 차례 가자지구 무장단체들이 보복을 천명한 상황이어서 대규모 자살폭탄테러가 연쇄적으로 지속될 게 자명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이스라엘 측이 여러 차례 경고한 야신의 사살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제거 가능성도 커졌다"고 그는 우려했다.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평화 로드맵은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박사는 지적했다.

◇각국 반응=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야신의 살해를 '유감스럽고 비열한 행위'라고 비난하고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25주년 기념식 참석차 출발하려던 국회 대표단의 이스라엘 방문 일정을 취소시켰다.

하비에나 솔라나 EU 대외정책담당 대표도 "(야신 피살은) 중동 평화를 위해 매우 나쁜 뉴스"라며 "이 같은 행동은 평화적인 여건을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미국은 (야신 사살에 대해) 사전에 어떤 보고도 받은 적이 없다"며 미국이 야신의 표적 살해를 허가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미국.유엔.EU.러시아 등 지난해 단계적 중동 평화안을 성사시켰던 후원 당국 특사들은 22일 밤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에서 긴급 회동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야신은…하마스 등 무장단체 정신적 지주

1936년 영국의 신탁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야신은 이스라엘의 득세와 팔레스타인의 패배를 보며 성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자 난민촌에서 친구들과 공중제비를 연습하다 목을 다쳐 사지 불구가 됐다. 이집트의 종교대학인 알즈하르 등에서 이슬람학을 전공한 야신은 가자지구 내 무슬림형제단에서 활동하다 제1차 민중봉기(인티파다)를 계기로 87년 하마스를 창설했다.

89년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된 이후 97년에 석방된 야신은 하마스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무장저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와 '협상을 주도한' 아라파트 수반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내 과격.온건 노선의 양대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야신이 수백명의 이스라엘인을 희생시킨 자살 폭탄테러를 선동.고무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살해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고 지난해 9월에는 야신과 다른 하마스 지도자들이 회합 중인 건물을 공습했으나 그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그 뒤 국제사회의 비난과 무장단체들의 보복공격이 격화할 것을 우려해 야신에 대한 직접 공격을 자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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