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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열린 세계와 닫힌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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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누가 4월을 두고 바람 속에 변화가 모색되는 달이라고 했던가. 삼성 특검이 종결되고 이건희 회장은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을 폐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 정부는 그동안 끌어오던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의를 완료하고, 30개월 미만의 뼈를 제거한 쇠고기만을 수입한다는 기존 조건을 완화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두 4월에 생긴 일이다.

이 두 가지 결정에 대한 여론은 각각 엇갈린다. 삼성의 경우, 특검이 더 철저하게 파헤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삼성의 불법승계와 로비사건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과, 특검 결과를 수용하고 재판 절차를 기다려 보면서 삼성의 쇄신에 대해 결단을 내렸다는 긍정론이 교차한다. 미국 쇠고기의 경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민들을 광우병의 위험에 대책 없이 노출시킨 퍼주기 협상이라는 비난과, 국제기준을 수용해 내린 결정이며 오히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소극적인 미국을 압박했다는 긍정론이 대립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 사회의 지적 합리성과 성숙도를 가름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삼성의 결정과 쇠고기 합의에 대해 모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글로벌리스트(globalist)다. 이들은 투자위험을 감수한 총수의 과감한 결단과 삼성의 조직문화가 오늘의 글로벌 삼성을 키웠다고 믿는다. 물론 삼성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알지만, 순환출자를 고리로 연계된 삼성의 지배구조에 대한 비난 등에 대해서도 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는 실용적인 사고를 견지한다.

수입 쇠고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가 30개월이 넘는 미국 쇠고기까지 수입하기로 합의해서 미국 도축장들이 위생상태 관리를 등한시해 한국 소비자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에 대해 글로벌리스트는 만약 광우병이 재발한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는 미국 축산업계로서는 더 세심하게 그들의 브랜드를 관리할 이유를 가지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미국 쇠고기의 수입이 금지된 지난 수년간 한우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쇠고기 외식은 그림의 떡인 상태가 지속되어 국민의 건강권이 오히려 위협받고 있다고 이들은 역공 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삼성의 결정과 쇠고기 합의에 대해 모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로컬리스트(localist)다. 이들은 그간 한국 경제 고도압축성장 비결의 하나였던 선단식(船團式) 그룹경영의 장점은 보기를 애써 외면한다. 단기 자본수익에만 집착해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건강한 경제운영보다는 언젠가는 터져 경제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버블’을 조장하는 영·미식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목격하면서도, 주식 보유 수만큼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셈법의 주식회사 경영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에 빠져 있다.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이라면 왜 삼성 주식은 폭락하지 않으며, 왜 세계 소비자들은 삼성 제품에 열광하며, 왜 국내외 투자자들은 삼성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의 몫이다.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미국에 있는 200만 한국 교포와 유학생들이 먹는 미국 쇠고기를 한국에 있는 한국인은 먹을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진다. 가축의 국제교역에 대한 과학적 기준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 통제국가로 결정하고 캐나다·멕시코 등 많은 국가가 이 결정을 수용해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국제기구는 미국 축산업계의 로비에 놀아나고 캐나다와 멕시코 공무원들은 그들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할 것인가.

삼성에는 긍정적이나 수입 쇠고기에는 부정적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편협한 민족주의자다. 이들은 지난 휴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때 한국민들을 무차별 공격한 중국인들과 생각의 궤를 같이한다. 우리 것에 열광하고, 우리를 위협하는 남의 것은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들이다.

로컬리스트나 민족주의자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논리는 세계 무대에서 통용되기 어렵다. 한국은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최대한 활용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한국이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지적 합리성과 성숙도가 얼마나 더 글로벌화되는가에 달려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