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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영광과좌절반세기>中.개혁과 장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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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엔창설이후 지금까지 유엔헌장 개정을 통한 조직개편은 세차례에 불과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을 6개국에서 10개국으로 늘렸고경제사회이사회 구성국을 18개국에서 54개국으로 증가시켰으며 공용어로 아랍어를 추가시킨 것이 전부다.
유엔의 기본적인 성격은 50년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사실을 쉽게 알수 있는 대목이다.
유엔은 지금 50년전의 옷을 입고 21세기의 문턱에 있는 것이다. 유엔개혁의 필요성은 창설 직후부터 있었다.동서냉전이 격화되면서 유엔은 소련의 거듭된 거부권 발동으로 기능마비상태를 숱하게 경험했다.본격적인 개혁의 목소리는 80년대들어 봇물처럼터져나왔다.
조직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다.여기에다 美蘇냉전구조의 와해로 양국의 거부권전략이 변경된 환경에서 유엔은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희망도 「유엔개혁요구」에 채찍을 더했다.
개혁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유엔 자체는 물론이고 각국 정부와 학계.경제계 등에서 줄기차게 나왔다.지난 6월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열린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이 유엔의 기구와 재정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사실에서 유엔개혁 은 선진각국의 공통관심사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개혁의 큰 줄거리는 이른바 유엔의 민주화와 재정분야 개혁 및기능 활성화로 요약된다.
기구개혁의 제1타깃은 안보리다.발족당시 51개 가맹국이 1백85개국으로 늘어난 지금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갖는 체제는 非민주적일 뿐더러 국제사회의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이 회원국 대부분의 생각이다.
유엔의 민주화를 위해 안보리의 개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데대부분이 공감한 것이다.
안보리 개혁과 관련해 93년 유엔실무팀은 ▲안보리의 상임.비상임국가를 늘리고 ▲거부권 국가를 늘리는 등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가들의 강한반발에 부닥쳐 실현 가능성이 모호한 상태다.
예를 들어 인도.나이지리아.브라질 등 지역강국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포함시키자는 논의에 주변국들은 『라이벌 국가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역권별로 상임이사국을 교대로 담당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으나 現기득권 국가들이 양보할지 미지수다.
이 때문에 안보리의 거부권을 아예 없애 가맹국의 완전한 평등권을 구현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사회이사회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54개국에 달하는 이사회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지적이다.
아예 경제안보리로 축소해 기능을 강화하고 산하기관들을 대폭 축소하자는 것이 요체다.
그러나 경제력에 따른 발언권에 차이를 두고 있는 세계은행이나국제통화기금(IMF) 등의 활동에만 집착하는 선진국은 경제사회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하자는 개발도상국들의 이같은 주장에 별로 귀기울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항상 안보리의 영향력에 가려 형식적인 모임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총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가맹국에서 선출된 의원으로 「세계의회」를 구성,의제를 논의하고 유엔운영을 검토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올해 50차총회에서 거론 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압박을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도 유엔의 당면 과제다.21세기를 앞두고 환경.인도적 지원.개발.국제테러.마약 등「汎지구적 과제」들이 유엔의 목을 죄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재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재정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유엔은 선진국의 불만을 사고 있는 분담금 산출방식을 개선하고 대량 무기수입국에 분담금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정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많은 유엔 전문가들은 유엔이 자체 수입원을 확보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화폐교환이나 국제항공편 등 국제적 이용수단에「유엔세금」을 부과하거나 매년 일정한 날짜를 「유엔통신일」로 정해 우편.전화요금의 일부를 유엔에 기부토록 하는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이밖에 유엔공채를 발행하는 구상도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줄기가 잡히지 않은 상태다.
***높아진 기대감 반영 이처럼 유엔에 대한 본격적인 체질개선 논의는 곧 유엔에 대한 높아진 기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냉전종식으로 「거부권 줄다리기」가 무의미해진 지금 강대국의협력은 어느 때보다 쉬운 환경에 있다.
지난 92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평화를 위한의제」에서 유엔군에 평화집행기능을 부여하고 분쟁 예방기능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 것도 강대국 협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지난 48년부터 87년까지는 불과 13건의 평화유지활동(PKO)이 구성됐지만 88년 이후 지금까지 겨우 7년 사이에 25건의 PKO가 구성된 것만 봐도 유엔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아진 기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93년 소말리아에 파견된 최초의 유엔 평화집행부대가 참담한 실패를 당한 것과 현재도 헤매는 보스니아 유엔군의무력함에서 알 수 있듯 지역분쟁에 있어 아직 유엔에의 「기대」와 「실력」 사이엔 괴리가 크다.
21세기는 인류가 유엔에 범지구적 과제를 던져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인간安保」이념 필요 「국가 안전보장」이라는 창설당시의이념은 「인간 안전보장」과 「지구 안전보장」이라는 이념으로 변환을 요구받고 있다.환경문제를 비롯해 경제문제,대량파괴무기의 확산방지,국경을 넘는 테러.에이즈 퇴치 등 범지구적.超국가적 숙제들을 해결 하기 위해 유엔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짐을 안아야 할 입장에 있다.
92년 환경개발회의(리우데자네이루),93년 세계인권회의(빈),94년 유엔인구.개발회의(카이로),95년 세계여성회의(베이징)등은 모두가 이같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유엔의 활동들이다.
그러나 범지구적 과제들은 아직 개발도상국엔 사치스 러운 활동으로 비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개도국에서는 그간 유엔이 부르짖은 개발과제가 결국은 선진국과후진국의 격차만 벌려놓은채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또다시 이같은 지구차원의 공동숙제들은 개도국의 발전만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개발이냐 인권이냐」는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갈등 해소는 21세 유엔이 안아야 할 가장 고달픈 숙제일 것이다.
〈李元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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