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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5.운남성 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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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다리(大里)와 하관(下關)박물관을 찾은 탐사대원 모두가 기대로들떠 있었다.여강에서 우리 문화를 의외로 많이 찾았던 뒤끝이라탐사팀은 윈난(雲南)省 서부의 중심지 다리에서 그동안 영겁의 잠을 자고 있던 우리 문화를 모조리 찾아 세상에 드러내놓겠다는의지로 가득차 있었다.
탐사팀이 예상한대로 진열실에 우리나라의 것과 모양이 유사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그 가운데 세문동경(細紋銅鏡).쌍어문동경(雙魚紋銅鏡),백제 무령왕관과 문양이 흡사해 보이는 새장식.청동 숟가락,고조선시대의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劒)과 모양이 비슷한 쌍배형동검(雙盃形銅劒),반달형(半月形)돌칼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 반달형 돌칼은 세계에서도 우리나라와 중국 동부및 북부 일부,일본 등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독특한 유물이다.
반달형 돌칼은 특히 우리나라의 고인돌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어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왜 이 반달형 돌칼이 우리나라에서 1만리나 떨어져 있는 멀고 먼 윈난성의 산속에서 출토되고 있느냐는 것이다.구석기시대말부터 신석기시대에 한반도에서 살았으며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는 만달인.승리산인도 지금의 서양사람들처럼 장두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북한 사학계의 정설이다.이에 비춰볼 때 우리 선조들과 그 시절 중국의 윈난성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머리모양이 같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직도 윈난성과 우리 민족 사이에는 언어나 풍속이 비슷한 것이 많이 발견된다.농경 문화 또한 대단히 비슷하다.
전문적인 것은 민족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다리지방에 살고 있는 백족(白族)들의 재미있는 결혼풍속 한가지를 소개해 본다.
백족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면 아주 극적인 데가 있다.축제 때가 되면 인근 마을에서 모든 총각.처녀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린다.예쁘게 단장한 처녀들이 춤을 추면 총각들이 주위를 빙 둘러싼다. 아름다운 백족처녀들은 줄이 달린 골무를 손에 쥐고 춤추면서 때때로 골무를 총각들에게 던질 것같은 동작을 반복한다.그때마다 총각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진다.『와아!』처녀들은 춤추면서 곁에서 군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는 총각들을 원 숭이 놀리듯 한다.아마 춤추고 있는 어여쁜 처녀가 자기를 향해 골무를던질 듯한 동작을 취하면 그 순간 총각은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일 것이다.그러나 그 처녀가 정작 골무는 던지지 않고 시늉만 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한숨을 내쉴 것 이다.이런 동작이 몇번이고 반복된다.춤판의 열기도 점점 뜨거워져간다.
처녀들의 춤이 무르익어갈 때쯤 춤추는 처녀들 속에서 드디어 골무가 날아간다.처녀가 던진 골무는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총각의 얼굴을 맞힌다.물론 처녀의 마음에 드는 총각의 얼굴에 큐피드의 화살이 날아가 박힌 것이다.이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결혼으로 골인한다.
결혼식 때는 총각이 처녀를 등에 업고 식장으로 들어선다.신부의 친구들이 신랑과 신부 사이에 과자를 매달아 놓고 뒷짐진 채로 입으로만 따먹도록 시킨다.
***춤추며 골무던져 남자선택 드디어 신랑.신부가 팔을 걸고술을 마시는 것으로 결혼식이 끝난다.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그 다음에 벌어진다.결혼식을 치른 신랑.신부가 마치 뜀박질 시합을 하듯 첫날밤을 보낼 신방으로 뛰어들어간다.신랑과 신부는 방안으로 먼저 들 어가려고 팔꿈치로 상대방을 밀쳐내기도 한다.
그것은 신랑.신부중에 먼저 신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붙잡는 사람이 평생동안 그 집 주인 노릇을 하며 산다는 백족 전래의 미신때문이다.
다리에서 쿤밍(昆明)까지는 4백㎞.우리나라 里로 꼭 천리 길이다.멀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짜증이 나는 길이다.차 두대가 겨우 비켜갈 만큼 비좁은 도로에 고물차들이 줄을 서 시커먼 매연을 계속 쏟아내는 탓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2시간쯤 왔을까….뜻하지 않은 일이탐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탐사팀 주위의 농촌풍경이 우리나라 농촌으로 착각할 만큼 낯이 익었다.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낫이 있고,도리깨가 있고,여강에서 보았 던 지게도 있는게 아닌가.
전 탐사기간을 통해 우리나라의 것과 모양이 비슷하게 생긴 낫은 오직 일본.윈난성.인도네시아의 발리와 수마트라섬에서만 찾을수 있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낫이 있고 밭 매는 기구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모양이 유사한 낫과 호미는 좀처럼 찾아볼수 없었다.
***호미는 휘어진 모양도 닮아 그리고 호미는 애당초 우리 민족 이외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다른 나라 사람들의 밭을 매는기구는 작은 손괭이처럼 생겼다.그러나 우리 민족의 호미는 끝이뾰족하면서도 나선형으로 뒤틀려 있어 괴상한 느낌마저 준다.그런호미를 탐사팀은 꼭 한번 미얀마 동북부에 살고 있는 리수족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왜 리수족들이 우리의 것과 닮은 호미를 사용하고 있는가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호미를 발견한 것은 기적에가까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농기구와 유사한 것을 찾다 보면 저절로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즉 우리나라 농기구와 유사한 것이 있는 곳은대개 우리나라처럼 찰기가 있는 쌀을 주식으로 먹고 있는 지역이란 점이다.윈난성과 미얀마 동북부,그리고 일본. 인도네시아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탐사팀은 다리와 추슝(礎雄)의 중간 지점인 난화(南華)근처에서 도리깨와 갈퀴를 발견했다.
도중에 몇번씩이나 즐거운 해프닝을 벌이고 추슝에 들어서니 벌써 오후 6시가 넘었다.보통4~5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탐사팀은도중에 차를 세우고 취재하느라 8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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