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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일병합 100년 일왕 한국 방문 변수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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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만난 사람 = 김영희 대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일 신시대를 선언했다. 시야를 과거보다 미래에 두고 두 나라에 윈윈이 되는 이해와 협력의 폭을 넓히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때마침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게이오 대학·사진) 교수를 만나 한·일 신시대의 전망을 들었다.

김영희=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에는 일본에 과거사를 추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한·일 관계는 급전직하로 후퇴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질까요.

오코노기=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평양 방문까지 했던 고이즈미에게 호감을 갖고 한·일 관계를 잘 풀어가려 했어요. 그런데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걸고 총리가 됐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 민족주의나 이념을 줄이고 실질 협력을 위해 전방위로 협조하겠다는 방향인데 후쿠다의 노선도 거의 비슷한 게 고이즈미-노무현 시대와 다르다고 할까요.

김=고이즈미에 비해 후쿠다는 확실히 아시아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오코노기=그렇습니다. 고이즈미는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미·일 관계만 잘되면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도 잘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후쿠다 정부는 아시아 관계와 대미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그 위에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이죠.

김=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코노기=이명박 정부 외교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국제 협력 속에서 남북 관계를 생각한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 관계가 우선하고 6자회담은 뒤따라간다는 식이었죠. 이명박과 후쿠다의 공통점은 6자회담을 중심에 둔다는 거죠.

김=일본 천황의 한국 방문은 가능합니까.

오코노기=천황의 외국 방문은 1년은 앞두고 추진하는데 그 사이에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문제가 돼요. 한·일 합방 100년이 되는 2010년이 그런 경우죠. 또 하나는 북한입니다. 북한은 이 대통령의 천황 초청을 비난하는 논평을 많이 냈어요. 일·북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어 적어도 비판은 안 할 정도가 돼야 천황의 방한이 가능할 겁니다.

김=2010년을 성숙하게 넘어설 방법은 없을까요.

오코노기=일본에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주만 공격 60주년 때처럼 가급적 조용히 넘어가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자는 것입니다. 전자가 우세합니다.

김=이명박 대통령이 요구한 재일 한국인의 지방 참정권 문제는 전망이 어떤가요.

오코노기=갑자기 해결하려고 하면 마치 한국 정부가 일본 내정에 간섭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쿠다 정부도 조금 시간을 달라는 겁니다. 지방 참정권을 주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일본 국적 취득을 쉽게 하자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를 함께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미국과 북한이 핵 신고 문제를 싱가포르에서 4월 8일 잠정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의 선에서 북한이 갈망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같은 반대급부를 주고 비핵화 3단계로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요. 북한 지원으로 건설 중이던 시리아 핵시설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강경파와 의회 대책이라는 인상도 주고요.

오코노기=과거 BDA 문제가 그랬죠. 동결했던 북한 자금을 풀어주기로 하고도 많은 시간을 소비했어요. 이번에도 원칙적인 합의는 했지만 미국으로서는 플루토늄의 경우 정확하게 봐야 하므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부시 정권 출범 이래의 흐름을 보면 결국 강경파들의 실패의 역사 같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중유 공급을 중단하여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을 허용했고, 금융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여 핵실험까지 허용했어요. 북한이 플루토늄을 얼마나 가졌느냐는 미국 쪽에서 철저하게 따질 겁니다.

김=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의 철저한 검증을 강조한 것도 미국이 4·8 싱가포르 합의의 선에서 북한의 신고를 일단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검증이라도 빈틈없이 하라는 주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코노기=동감합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미국보다 대북 문제에서 강경합니다. 그래서 부시가 미국 내 강경파에게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강조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한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고려한 적 없어요. 너무 안심하면 안 돼요.

정리=이승녕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오코노기 마사오는=1945년생. 일본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교수. 게이오대 법학부 정치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72년부터 74년까지 연세대에 유학한 것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 연구자가 됐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학회·언론은 물론 정부기관에 대한 조언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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