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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일보 월례포럼

공공기관 이전과 균형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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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지난 14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성경륭 위원장(가운데)을 초청, 본사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임현동 기자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지난 14일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성경륭 위원장을 연사로 초청해 토론을 벌였다. 성 위원장은 ‘세계화 시대의 한반도 공간 구상과 발전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하에 공공기관을 12개 시·도에 나눠 배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 위원장은 이미 정해진 만큼 큰 틀을 바꾸긴 어렵다고 말했다. 편집자

▶사회(김정수)=국가 균형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잘 사는 나라 만들기'일 것입니다. 이런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정 중심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노성태=공공기관을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산.이전한다는 발상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2~3개 대도시를 선정해 이곳에 공공기관을 집중.배치하는 게 현실성이나 비용 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더 추진하는 방식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박원암=과거에도 수도권 집중이 문제라고 해서 여러 차례 균형 발전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렇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균형 발전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 자체가 균형입니다. 힘들어도 몰리는 데는 뭔가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굳이 수도권이 문제라면 집중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다극 분산구조로 가선 안되며, 2~3극 구조로 가야 합니다.

▶성경륭=공공기관 분산은 효율성만 따져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행정하는 입장에서 16개 시.도를 모두 고려할 수밖에 없어서였습니다. 또 각 지역은 서로 공공기관을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고루 분산 배치하되, 효율성을 살리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산업과 연결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2~3극 구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충남의 연기.공주와 대덕, 오송은 잘될 것 같은데, 부산.대구.광주등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정운영=고속철이 뚫리니 대구에 미장원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대구에 사는 부인들이 서울의 유명 미용실을 다니기 때문이랍니다. 국가 기관을 옮긴다고 해서 얼마나 인구 분산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낮에 가서 근무하고 밤에 수도권으로 옮겨올 수도 있습니다. 구미.창원 등이 30여 년의 집중투자로 큰 도시가 된 것처럼 지역에서 먹고 살 수 있어야 균형 발전이 될 것입니다.

▶지동현=DJ정부 시절 조흥은행더러 본점을 지방으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당시 조흥은행에 있으면서 이전할 경우 지역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를 살펴봤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장규=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 판정을 받은 이후 정부가 행정 중심도시를 추진하면서 결국 대통령(청와대)과 장관(부처)들이 따로 사는 모양이 그려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행정의 효율성이 문제됩니다. 인터넷이 발달해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일할 수 있다지만, 한 울타리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원안인 수도 이전 구상이 그대로 추진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대통령과 장관이 따로 떨어져 지내는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성경륭=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독일이 비슷한 사례가 아닐까요. 말씀하신 대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이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공공기관 이전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대전 청사의 경우 고위직은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이하는 대부분 대전으로 이사갔고 생활 만족도도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혜경=각 지역들이 원하는 바람에 공공기관을 고루 분산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되면 사회적 낭비가 상당히 많이 생길 것입니다. 차제에 조선시대부터 유지돼 오고 있는 현행 시.도 형태의 행정체계를 개편하면서 균형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요. 또 공기업 99%가 떠나기 싫다고 하는데, 강제로 옮기는 게 효율적인지 의문입니다.

▶최정표=서울은 그대로 두고 지방에 집중 투자해 중심지로 키우는 게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과천에서 정부 기관을 뺀다고 하자 벌써 상당한 반발이 일고 있습니다. 빠지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넣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통일 후에도 공주.연기가 행정도시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성경륭=서울은 그대로 두고 지방에 더 자원과 권한을 주자는 분권론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분산 정책 없이 분권을 하면 지방 재정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분권과 분산을 같이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 앞으로 비게 될 과천청사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서울에 있는 학교와 기업이나, 외국의 연구개발 시설 등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지방으로부터의 인구 집중을 유발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이제민=지역 균형 발전이 차세대 성장 동력과 유기적으로 잘 결합돼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동북아 중심국가의 시각에서 보면 LG필립스LCD나 삼성전자가 수도권에 신.증설하겠다던 공장은 진작 허가가 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상당 기간 수도권 규제에 묶여 있었던 것 아닙니까.

▶지동현=수도권은 자원을 투입해 봐야 효과가 없어 지방을 키운다는 게 균형발전위원회의 생각입니다만 이는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도권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반론도 상당합니다. 확실치 않은 가설을 갖고 엄청난 변화를 추진했을 때 생길 부작용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장규=행정도시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하루 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닌 만큼 정권의 유한성을 감안해 추진했으면 합니다.

▶성경륭=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정부는 그에 따라 집행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권의 유한성도 고려하고 있고, 불확실성 속에서 내린 결정이 제대로 될 것인가에 대해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퍼블릭 디시전(공공 의사결정)에 따라 옮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러나 공적인 결정이 내려졌는데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민주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리= 이영렬.김원배 기자<youngle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성경륭 균형발전위원장 모두발언

수도권에 몰린 공공기관 12개 광역 시.도로 분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보면 대도시들이 흩어져 있을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은 상위 15개 도시 중 9개가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미국.일본.프랑스 등은 골고루 퍼져 있다. 한 군데 중심으로 몰리는 구조로는 중진국 수준에 들어갈 수 있지만 더 이상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혁신주도형 균형 발전의 틀로 바꿔야 한다.

수도권에는 전체 공공기관의 85%가 모여 수도권 집중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공공기관들을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한 12개 광역 시.도에 균형 있게 배치할 계획이다. 이전 기관은 지역 전략 산업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짝지어진다. 또 수도권.대전-충남을 제외한 광역시와 도에는 1개씩의 특성화된 지역 거점도시, 즉 혁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다.

기존 산업단지와 연구단지를 결합해 효율을 높이는 혁신 클러스터도 추진한다. 정부와 민간이 추진하는 12개의 클러스터가 있으며 이미 기반이 잡힌 울산(자동차 부품).수원(삼성 디지털밸리).대덕(연구 개발) 등은 성공 가능성이 큰 곳이다. 충북 오송 지구에는 보건의료 관련 5개 공공기관과 관련 기업들이 들어가면서 인구 2만 명 정도의 생명과학(BT) 혁신도시가 구상되고 있다.

이렇게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옮기는 것은 결코 수도권을 죽이는 정책이 아니다. 그동안 성장에만 매달려 왔지만 이제는 수도권도 삶의 질에 무게를 두고 발전해야 한다. 용산.상암 지구를 국제 비즈니스센터로, 관악벤처밸리를 BT산업의 거점으로 키우는 등 수도권 소권역별로 25개 정도의 산업별 미니 클러스터를 세울 계획이다.

경기도 등에서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공장총량제를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현 정부 임기 중에는 다른 지역과의 균형 발전을 고려하는 지금의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수도권 규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행정도시는 수도권 중심의 일극체제가 개방혁신형 다극체제로 가는,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행정도시 건설을 시작으로 6대 지역경제권의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도시는 통일 이후에도 서울과 평양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중추 지역으로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