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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스핑크스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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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마자린 팽조가 여섯 살 되던 해인 1981년 아버지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팽조는 학교에서 "우리 아빠가 대통령이야"라고 자랑했다. 선생님은 팽조의 엄마를 불러 "아이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공식적으로 미테랑은 팽조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오르세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팽조의 어머니는 미테랑의 오랜 연인이었다. 미테랑은 레지스탕스 시절 만난 동지인 아내 다니엘과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해로했다.

팽조는 이후 스스로 자신을 감추고 살았다. 어머니처럼 아무에게도 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58세에 얻은 딸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버지는 대통령궁에서 몰래 빠져나와 센 강변 아파트에서 팽조와 같이 살았다. 대통령궁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팽조는 대통령궁을 드나드는 차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다. 미테랑의 측근과 가족은 모두 팽조를 잘 알았다. 한 측근은 "팽조는 미테랑의 삶의 중심"이라고 회고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존중했다. 미테랑도 정보기관을 이용해 딸에 대한 보도를 극구 막았다. 그러다 94년 부녀가 식당에서 함께 나오는 사진이 파리마치라는 잡지에 실리는 바람에 팽조의 존재가 확인됐다. 바로 전날 미테랑은 딸에게 전화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날 팽조는 온몸이 스멀거려 오랫동안 목욕을 했다. 미테랑의 별명이 '스핑크스'로 굳어졌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루브르박물관 안뜰에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기로 결정한 미테랑은 이집트 문명 애호가. '베일에 가린 사생활'로 그 이미지를 더했다.

96년 암으로 숨지기 직전 미테랑은 팽조에게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측근에게는 자신의 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팽조를 앉힐 것을 지시했다. 장례식 날 세계가 스핑크스의 딸을 주목했다. 이제 철학교수로 자란 팽조는 미테랑기념사업회 이사로 스핑크스의 신화를 지켜가고 있다. 프랑스는 공인의 사생활에 매우 관대한 나라다.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숨겨진 딸로 살긴 훨씬 힘들 것이다. 아버지가 무심하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오병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