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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매듭과대전환>3.하버드포럼-제2주제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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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趙 利 濟 〈하와이大 교수〉 로버트 네이선 〈네이선社 이사장〉 朴英哲〈금융연구원장〉 具海根〈하와이大교수〉 앨리스 암스덴〈MIT교수〉 어마 아델만〈UC버클리大교수〉 6.25전쟁이후 미국은 전후 복구기간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방위를 담당해주거나 원조.기술이전.수출시장 제공등을 통해 한국경제의 발전에 기여했다.53년에 체결된 「韓美 상호방위협정」은 그후 다양한 형태로 경제성장의 터전이 됐다.
우선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는 한국인이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해주었다.한국이 45년이후 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중 70%가량이 60년 이전에 제공된 것이며 이 원조는 대부분 소비재였다.
원조중 일부는 발전소.시멘트공장 건설이나 광산개발등 전쟁으로폐허가 된 산업시설과 사회간접시설을 복구하는데 사용됐다.이 결과 한국경제는 53년부터 61년까지 연평균 3.9%의 성장률을기록했다.
미국은 또 한국의 기술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원조를 통해 들어온 물자를 사용하는 기술을 가르쳤고 한국사람들을 미국으로 불러 교육시켰다.50년대에 수많은 한국인 기술자.관료들이 미국의 각종 재단 후원으로 미국유학을 떠났다.이들 중 일부가 그대로 미국에 주저앉아 두뇌유출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계기가 됐던게 사실이다.
미국은 이밖에도 이승만 정권때 단행된 토지개혁등 근대적인 제도를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박정희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한국의 방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고 한국은 미국의 방위우산속에 있었다.한국의 對美수출은 60년 3천3백만달러에서 71년 10억3천5백만달러로 늘었고 90년에는 6백50억달러로 치솟았다.60년대에는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이 부족했다.국내이자율은 너무 낮아 국내자본을 끌어들일수 없었고 외국으로부터 의 원조는 급격히 줄어들고있었다.이에따라 한국정부는 국내자본을 동원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했고 차관을 끌어오기위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었다.이자율인상으로 사채시장등에 머물렀던 돈이 제도권으로 들어왔고 미국은차관을 제공하는 주 요 대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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