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이긴 사람들 ② - 한양대 김정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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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고고성을 내며 세상 빛을 보았다. 엉금엉금 기어다녔고, 목도 잘 가누었다. 첫돌 때까지는 또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쉽게 넘어지고, 오르막길에서는 힘에 부쳐 몇번씩 쉬어야만 했다. 다섯 살 나던 해 부모와 함께 병원에 갔다. 신문에서 우연치 않게 본 ‘근육병’ 증세와 유사하다 싶어 발걸음을 한 것.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란 부모의 간절한 기대는 허물어졌다. 의사는 ‘근육병’이라면서 “온몸 근육이 약해지면서 호흡근육이 약화돼 20세 전후에 사망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2세가 된 김정함(22·한양대 생명공학과 4·지체장애 1급)씨는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지난 17일 한양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김씨는 전동휠체어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다리는 아예 쓸 수 없고, 손도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뿐이었다. 김씨는 근육세포가 죽어가는 근이영양증(유전자에 의해 근력이 저하되는 병)을 앓고 있다.
   “나이가 어려 무슨 병인지도 몰랐어요. ‘죽는다’는 소리에 덜컥 겁만 났을 뿐이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정도가 심해졌다. 툭 하면 넘어져 친구들과의 축구시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4학년 때부터는 휠체어를 탔다. 학교에는 계단이 많아 어머니 김준희(47)씨는 매일 김씨를 업어 날랐다. 체육시간이면 교실에 혼자 남아 친구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친구들과 한창 뛰놀아야 할 나이. 하지만 김씨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장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냥 남들과 다른 제 자신이 싫고, 현실에서 도피해버리는 꿈만 꿨죠.”
   공부고 뭐고 만사가 다 귀찮았다. 시험 때만 간간이 공부했던 탓에 성적은 항상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김씨가 새롭게 거듭나게 된 건 고2때. 부모님의 눈물과 신앙을 마주하면서부터다. 이후 김씨는 생명공학자의 꿈을 품고 공부에 매진했다.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근육병 치료법을 개발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몸이 불편한 탓에 학원에 갈 처지가 안 되는 김씨는 영어·수학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며, 내신위주로 공부했다. 중위권이었던 성적은 조금씩 올랐고, 2학년 2학기부터는 전교 10% 정도를 유지했다. 휠체어에 앉아 간신히 손을 뻗어 공부하는 김씨를 보며 어머니는 숨죽여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내신 3등급, 수능

평균 3등급(언어 3, 수리 4, 외국어 2, 과학탐구 3과목 3등급)을 받은 김씨는 결국 2005년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한양대에 합격했다.
   김씨는 여름에도 1주일에 한번밖에 샤워를 하지 못한다. 온가족이 동원돼 잡고, 들고, 씻기다 보면 2시간여가 걸린다. 그런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러워 대학에 들어가면서 효도하는 법을 배웠다. 장학금을 받기로 한 것.
   “저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들어온 터라, 일반전형으로 합격한 애들보다 공부가 많이 처지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았다. 교수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책에 적고, 그날 그날 2~3번씩 반복해 공부했다. 결국 1학년 1학기와 3학년 2학기 때 160명 정원 중 수석을 차지했다. 몸상태가 악화됐던 2학년 1학기를 빼놓고는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실험시간은 늘 아쉽고 안타깝다. 동료들이 실험할 때 구경밖에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가 실험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생물학적 요인을 시뮬레이션하는 ‘생물정보학’을 전공하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본격적인 생물학 실험 전에 시뮬레이션을 함으로써 결과를 예측, 실험내용을 수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싶다”는 김씨는 자신처럼 근육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단다. 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근육병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며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내가 앓고 있는 병을 고쳐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그는 ‘근육병 유전자 치료’에 대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에는 외국에 나가 박사과정을 밟고 싶다고 했다. “20세 전후에 사망할 것이라고 말했던 의사에게 ‘근육병은 치료될 수 있다’는 걸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김씨.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전동휠체어에 희망을 싣고 열람실로 향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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