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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한 83세 유정순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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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생님'이라고 불러보니 너무 정겹게 느껴져 일부러 질문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자꾸 부르게 되네요."

올해 83세인 유정순(柳貞順)할머니는 현재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이달 초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을 상대로 문을 연 평생교육기관인 석산초등학교(전북 정읍시 감곡면)에 입학했다. 40대 이상인 동급생 50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국내 최고령 초등생이다.

柳할머니는 집에서 가만히 있어도 혼자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을 나이지만 '학교에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학교에 가는 시간이 30분 이상 걸리지만 매일같이 걸어서 다닌다. 입학식 때부터 단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다.

그의 등교시간은 오전 8시30분. 같은 반 학생 50명 중 가장 먼저 나온다. 선생님의 교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는다. 그리곤 칠판을 닦고 쓰레기를 줍는 등 교실을 정갈하게 정돈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기다린다.

柳할머니는 일제시대 2학년까지 다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다. 70여년 만에 다시 학교 문을 들어선 것이다.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10여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눈이 밝고 귀도 또렷하게 잘 들릴 만큼 건강하다.

할머니는 "받침과 겹모음이 있는 글자를 쓰는 것이 어렵다"며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해 죽기 전에 중학생이 돼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40대부터 80대까지로 가난이나 6.25 난리통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수업시간마다 초롱초롱(?) 눈이 빛난다.

"1 더하기 8은 얼마입니까"하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다가도 "사과 한개에다 귤 여덟개를 합치면 몇개입니까"라는 물음에는 이곳 저곳에서 "저요, 저요"하고 손이 올라간다.

이 학교 박종원 교장도 신이 난다고 했다. "회갑을 넘긴 할아버지가 아침수업에 나왔다가 오후에 농사를 짓고 야간수업에 다시 나옵니다. 학생 된 기분을 느끼려고 수업을 마치면 가방을 둘러메고 꼭 운동장 서너바퀴를 돌아보는 아저씨도 있어요."

정읍=장대석 기자

◇석산초등학교=지난 10일 문을 연 평생교육기관인 석산초.중.고교의 초등 과정. 수업은 하루 4~5시간씩으로 매일 형편에 따라 오전.오후.저녁반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1년 3학기제로 4년 동안 5040시간을 이수하면 교육부로부터 초등학교 졸업을 인정받는다. 정부 지원금과 설립자인 강귀년 목사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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