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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까지 등 돌려 … 두 달 만에 하차한 박 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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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날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27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배우자의 투기 의혹 등으로 코너에 몰렸던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결국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수석은 사퇴 의사를 26일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지난 24일 재산 공개로 농지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지 이틀 만이다. 박 수석은 류 실장에게 “억울한 점이 없지 않지만 내 문제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더 이상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경질한 것이 아니라 박 수석이 결단을 내렸다. 박 수석 본인이 너무 괴로워했다”며 “이 대통령으로선 깊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과 관련된 논란이 증폭되고, 국민 여론도 갈수록 악화되자 이 대통령의 고민은 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연좌제 사회도 아닌데 배우자의 재산 문제를 가지고 박 수석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수석직에 남도록 하자니 하루가 다르게 등을 돌리는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박 수석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이 대통령이 수용하게 되는 과정엔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박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박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경로로 청와대 측에 전달해왔다. 게다가 악화하는 여론을 견디다 못한 당 지도부는 2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박 수석 사퇴에 대한 당의 입장을 최종 정리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연일 사퇴 공세를 펴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청와대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임박했던 것이다. 이 경우 ‘4·9 총선’ 이후 본격화하려고 별렀던 국정 개혁 프로그램의 추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무엇보다 박 수석의 거취가 지난번 청와대 정무라인의 개편 논란에 이어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 일부 인사들 간의 ‘파워게임 2라운드’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었다. 이런 요인들이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조기에 박 수석 문제를 정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박 수석의 사퇴로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박 수석과 비슷한 경우로 농지 투기 의혹이나 위장전입 의혹에 시달리는 수석들이 두세 명 더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수족인 청와대 비서진의 거취 문제는 장관과 다르다”며 “내각이 줄사퇴했던 조각 때와는 달리 더 이상의 추가 사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바람처럼 상황이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야당의 공세와 국민 여론, 또 이번 기회에 청와대 내부의 정무·인사 시스템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내부의 반발 등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결정 내렸다”=27일 밤 박 수석의 사의 표명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환영했다.

강재섭 대표는 “본인이 사표를 냈으니 대통령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며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일 사표를 내지 않았으면 내일(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논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핵심 당직자도 “대통령이 자기 참모를 자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 당으로선 환영”이라고 했다.

당내 소장파 중 한 사람인 차명진 의원은 “지역에서 만나보면 박 수석 사퇴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0%나 되더라”며 “조금 더 빨리 그만뒀더라면 하는 마음은 들지만 잘 해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글=서승욱·이가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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