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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떨렸다. 겁이 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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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결승 3번기 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10보(93∼107)=고수의 기본 조건을 압축하면 이렇다. ‘상상력이 풍부할 것. 단 현실적일 것’.

97로 가로막자 98 젖힌다. 바둑판은 비로소 불이 붙고 있다. 99부터 103까지를 선수해 둔 것은 A의 약점을 완화시킨 수로 ‘결전’의 전주곡이라 한다. 이세돌 9단은 105로 뚝 끊으며 박영훈 9단을 날카롭게 쏘아본다. 어쩔 것이냐고 그는 묻고 있다. 초점은 백이 106으로 몰 수 있느냐. 인터넷 해설에 나선 일류 기사들은 “모는 즉시 이세돌은 잡으러 갈 것이다. 선택은 박영훈의 몫이다”고 입을 모은다. ‘참고도’의 그림이 빠른 속도로 그려진다. 백이 몰면 흑1로 되몰아 몽땅 잡는 수. 백은 안에서는 살 길이 없으니 4, 6으로 끊어 전면전을 벌이겠지만 13에 이르러 백이 힘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훈은 106으로 몰아버렸고 해설자들은 일제히 손을 멈춘 채 모니터를 본다. 폭풍 전야의 침묵…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세돌이, 천하의 싸움꾼 이세돌이 107로 물러선 것이다. 이세돌은 국후 솔직히 털어놓았다. “떨렸다. 판이 좋아 겁이 났다.”

판 위에 도사린 또 다른 변수는 어떤 승부사도 ‘인간’이란 점이다. 그는 2국에서 대마를 잡으러 가 기어이 잡았으나 대형 사석전법에 걸려 대패했다. 그 악몽이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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