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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 결혼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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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MBC -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가 인기다.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 프로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싱글이 늘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연예인 네 커플이 가상의 신혼부부를 연기하는 리얼리티 쇼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긴 하지만 이들의 가상 신접살림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긴다.

유명 스타들이 부부 역할을 하는 설정이니 관심을 안 끌 수 없다. 벌써 유사 프로들이 유행할 조짐이다. 스타 사생활 엿보기 프로에 따라다니는 시청자의 비판도 잠잠하다. 스타들이 잠옷 차림으로 침실을 들락거리며 스킨십을 해도 ‘낯 뜨겁다’는 식의 반응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네 커플의 캐릭터 쇼가 성공 요인이다. 로맨틱 커플, 쿨하고 섹시한 커플, 귀여운 커플, 현실적인 위기 커플의 유형이 나온다. 이들 유형에 자기 체험을 빗대어 보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인 양 하지만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이 프로에서 진짜 리얼리티가 출발하는 지점이다.

스타들의 실제 체험이나 이미지도 프로에 녹아 들어간다. 탤런트 신애는 데뷔 초 스캔들에 거듭 휘말리면서 상처받았던 얘기를 털어놓는다. 훈남으로 인기 높은 알렉스는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 속 로맨틱 커플과 실제 스타의 개인사가 뒤섞이는 것이다.

이처럼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것은 TV 오락프로에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시청자도 이 경계의 모호함을 문제 삼기보다 적극적으로 즐긴다. 어울려 보이는 커플에게는 실제로 사귀라고 여론 압박을 넣기도 한다. 거꾸로 지금까지의 모습이 전부 연출이라 하더라도 리얼리티 쇼의 한계를 크게 문제 삼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진짜 눈여겨볼 대목은 그것이 결혼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그것도 조만간 부부 관계가 자동 해지될 임시 커플이다. 신혼 때 흔히 발생하는 주도권 다툼 등의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 위기가 곧 봉합될 것임을 시청자는 잘 알고 있다. 무심한 남편을 연기해 악플에 시달린다는 코미디언 정형돈은 현실 속 남편과 달리 조만간 개과천선할 것이고, 끝까지 서로 맞지 않는다면 이혼 대신 프로그램 하차라는 해법이 마련돼 있으니 그 또한 부담 없다.

이 프로는 신혼의 환상을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어쩌면 실제 부부들의 삶이 이처럼 달콤하지 않으니 맛보기 체험 프로가 더더욱 인기인 것은 아닐까. 바로 옆 채널에서는 실제 이혼 상담 내용을 소재로 온갖 요지경 속 같은 부부 갈등을 보여 주는 KBS-2TV ‘부부 클리닉’이 8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