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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蘇 우호조약 폐기 의미-血盟서 단순한 이웃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동맹 조약(朝-蘇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관한 조약)의 폐기를 통보한 것은 러시아와 북한이 이제 동맹.
혈맹이 아니라 그냥 「이웃」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식선언한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따라서 쌍방간 연결된 냉전시대 의 끈은 완전히 청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과 옛소련(이하 러시아)의 상호조약은 지난 61년7월6일모스크바에서 체결돼 같은해 9월10일 평양에서 비준서가 상호교환됨으로써 효력이 발생했다.이 조약의 핵심은 북한이 침략당했을경우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자동 개입하는 조항.
이것은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돼 왔다.왜냐하면 「북한 피침(被侵)」이라는 문구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북한이 언제든 자의적 해석에 따라 한반도 분쟁상황을 선언할 수 있어 그 악용이 우려돼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이 조약의 폐기를 위해 다각적인 외교노력을 기울여 왔다.
물론 이 조약은 벌써부터 폐기될 운명을 안고 있었다.냉전시대가 와해되면서 이 조약의 생명도 끝장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옛소련 붕괴후 모든 대외조약을 승계한 러시아정부는 93년 북한이 이 조약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도록 자동군사개입 조항의 의미를 러시아가 해석하기로 결정,북한측에 통보했다.
이때부터 이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했다고 볼수 있다.
이에 앞서 92년 옐친러시아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했을때 『이 조약은 사문화한거나 마찬가지』라고 밝히기도 했다.이렇듯 이 조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러시아는 이후 조약의 폐기및 새로운조약 체결을 北측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매우 불쾌해했다.러시아는 북한에 군사동맹조약 폐기를 통보하는 대신 새로운조약을 맺자며 조약초안을 전달했다.그 내용은 일반적인 선린우호조약과 같다.한국과 러시아가 맺고 있는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과 큰 차이가 없다.
『국내문제 불간섭등 일반적으로 확립된 국제법 원칙에 따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양국간 모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등의 내용이 러시아에 의해 새롭게 제시된 우호조약의 골자다.북한과 러시아중 어느 일방이 침략당했을때 서로 군사 협력한다는 내용은 없다.폐기통보된 군사동맹조약처럼 가상적국을 상정하고 있지도 않다.
러시아가 제시한 이같은 초안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 알수 없다.그러나 러시아가 군사동맹조약 폐기를 통보한 이상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새 조약체결을 위한 협상에 임할 것이거의 확실하다.
〈李相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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