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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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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는 드디어 금정산으로 오르는 솔 숲 사이에 들어섰다. 일주문을 지나고 범어사 사찰 경내에 들어서자 소년 스님은 자세를 가다듬고 대웅전을 향하여 합장배례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가 일러주었다.

- 저기 가서 만나실 분을 신청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서 기웃거렸다. 회색 한복을 입었지만 머리는 기른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 광덕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 어디서 왔소?

- 함안 장춘사의 대현 스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이번에는 안쪽에서 젊은 스님이 내다보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접견실로 보이는 방안에 나를 남겨두고 가더니 잠시후에 키가 후리후리하고 마른 중년의 스님이 들어섰다. 첫눈에도 그는 지식인 풍의 칼칼한 인상이었는데 눈매가 부드럽고 웃음을 머금은 듯한 얼굴이었다.

- 나를 찾아 오셨다구?

그가 고 광덕 스님이다. 하동산 큰스님의 제자이면서 나중에 불광이라는 불교잡지의 발행인도 하고 대학생불교연합회도 이끌었다. 내가 감옥에서 석방된 이듬해에 입적했다. 그동안 그에 관한 소식은 간간히 듣고 있었지만 그 시절 이후 굳이 찾아가 만나거나 수소문했던 적은 없다. 집안 모두가 기독교 집안이던 어머니는 불교쪽 얘기가 나오면 광덕 스님의 예를 들곤 했다. 종교란 서로 가는 길이 조금씩 다를 뿐 결국은 모두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 그녀의 당연한 결론이었다.

나는 대현에게서 받은 서찰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짬짬히 앉았다가 서두를 뗐다.

- 출가를 원한다고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아요. 이 서찰은 갖고 있다가 큰스님 뵈올 때 직접 드리시오.

내 기억에는 그가 한번도 어려운 설법을 하거나 관념적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건 다른 선원의 스님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물론 신도들에게는 책자에 나오는대로 그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글 쓰는 문인들도 저희끼리는 문학 담론을 장황하게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신도들이나 손님이 오면 묵는 방에 안내되었다. 저녁 밥 때가 되어 행자승들이 차례로 들여다 보고 가더니 공양을 맡은 이가 들어와 밥상을 놓고 내 앞에 합장을 하며 앉는다.

- 왜 출가하려고 해요?

-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내 대답이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밥 주면서 초짜를 한번 건드려 보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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