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드차일드>사랑이의 일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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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95년 5월31일.
「나는 오늘 우리반을 대표해 미술대회에 나갔다.이전에 동물원에서 본 것을 열심히 그렸다.꽃상을 받기 위해서보다 우리반을 대표해 나간게 기분이 좋다.만약 내가 상을 받게 된다면 하느님과 엄마.아빠,우리반 친구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다 .」 이는 국민학교 1학년인 사랑이의 석달전 어느날의 일기다.
만5세가 되던 93년2월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사랑이는 현재 무려 15권의 일기장을 갖고 있다.
벽에 쓰여진 글씨나 거리의 광고만 봐도 궁금해 견디지 못하던사랑이는 만3세가 되던 해 일찌감치 한글을 터득했다.그러나 나이가 나이였던지 이해력은 부족했고 쓰기도 잘하지 못했다.
혹시 너무 일찍 한글을 깨쳐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을까 내심걱정됐는데 정말 사랑이는 모르는 글자가 거의 없게 되자 새로운걸 찾는 듯 싶었다.
며칠을 궁리하다 일기를 쓰게 해보자고 작정했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더니 사랑이는 반색하며 좋아했다.처음엔 혼자서 쓰는 게 무리일 것같아 일기장 한페이지를 반으로 나눠 반은 사랑이가,반은 엄마가 쓰기 시작했다.친구랑 놀던 얘기,싸운얘기 등 아주 간단한 얘기부터 엄마가 말로 불러 주면 사랑이가받아쓰곤 했다.
처음엔 삐뚤삐뚤 쓰던 사랑이의 글씨는 일기장이 불어나면서 예쁘게 자리잡아 가기 시작했고 별도로 연습시키지 않아도 맞춤법도곧잘 맞게 써갔다.
처음엔 반페이지 분량의 절반을 메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혼자서도 충분히 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요즘들어서는 으레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돼 내가 말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해나가고 있다.
사랑이는 상상력도 풍부해져 요즘엔 동시도 곧잘 지어 일기장에쓴다.문득 시간이 날 때 나는 사랑이의 옛 일기장을 들여다보곤한다.그속엔 사랑이의 사랑스런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조명원〈충남천안군성거읍요방리 로얄성심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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