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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비너스도 반한 맛 … 포천 어느 한우농가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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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품질 고급화 및 브랜드화로 한우의 경쟁력을 높여온 한창목장 김인필 대표<右>와 아들 희철씨가 23일 경기도 포천 축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23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한창목장. 축사에 있던 소들이 근처의 빈터로 나갔다. 한 시간 정도 밖에서 거닌 소들은 축사로 돌아와 목장에서 직접 만든 사료와 지하 암반수로 저녁을 먹었다. 소 한 마리당 축사 면적이 20㎡로 넓고, 바닥은 축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김인필(64) 대표는 “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육질이 좋아진다”며 “고품질을 유지해야 미국산 쇠고기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 소식에 한우 농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겁을 먹고 소를 내다파는 축산농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우 쇠고기 도매가격(22일 기준)은 ㎏당 평균 1만1929원으로 지난달에 비해 16%나 떨어졌다.

◇“주저앉으면 안 돼”=소의 털을 닦아 주고, 얼굴 표정을 살피던 김 대표는 “쇠고기 시장 개방으로 한우 농가의 걱정이 크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료값은 이미 많이 올랐다. 이런 상황에 한우의 반값도 안 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대거 들어오면 한우 농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며 “품질만 좋으면 소비자들이 반드시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꼬리곰탕을 예로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로 꼬리곰탕을 끓이면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 맞는 한우 고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와 차별화된 고급육을 생산하면 소비자들은 한우를 찾을 것이다.”

사료업계에 종사하며 돼지·닭을 키우던 그가 본격적으로 한우에 손을 댄 것은 1998년. 외국산이 들어와도 한국 고유의 먹거리는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한우를 택했다. 돼지·닭은 대부분 수입 종자에 의존하지만 한우는 수입 종자가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선 품종 개량과 현대적인 사육시설을 갖추는 데 힘썼다. 빛이 들어오는 정도,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해 축사를 지었다. 내부에는 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사람의 발길을 줄이는 대신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했다. 출생부터 도축까지의 사육정보를 모두 컴퓨터에 담았다.

그는 일본 와규(和牛)의 성공 사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일본도 쇠고기 시장이 개방됐지만 와규는 엄격한 품질관리와 브랜드화로 미국산 쇠고기보다 10배 이상의 가격에 팔린다. 김 대표는 요즘도 1년에 두 차례 이상 일본을 방문해 축산농의 경영 노하우를 배운다.

한창목장에서 나오는 한우의 품질은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1+’ 이상이 95%에 달한다. 일반 목장은 이 비율이 40% 정도다. 여기에 항생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 소’라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김 대표는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다 보면 도태되기 마련”이라며 “축산 농가들도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 단계 줄여야”=50마리에서 시작했으나 10년 새 290마리로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를 4억원으로 잡을 정도로 자리도 잡았다. 하지만 고품질의 한우 생산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최장 5~6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치면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창목장의 유통 단계는 3단계를 넘지 않는다. 이 목장에서 생산된 한우는 대부분 유명 음식체인에 납품된다. 중간 유통을 없애니 서로 남는 장사다. 나머지는 전문 유통업체인 ‘C&C푸드’를 통해 ‘한우백년’이라는 브랜드로 일반 소비자에게 팔린다. 중간 마진을 줄이니 품질은 최상급이면서 가격은 백화점보다 20% 정도 싸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러시아의 마리야 샤라포바와 미국의 비너스 윌리엄스도 먹고 갔는데, 너무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며 “길만 열리면 미국에도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들인 희철(33)씨도 대학에서 축산학을 공부하고 가업을 잇고 있다. 희철씨는 “한우는 별도의 수요층이 있기 때문에 축산농가들이 자포자기하지 말고, 고급화에 주력한다면 개방 파고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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