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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쌍둥이 형제와 나선생은 제주도로 내려갔다.
『드는 줄은 몰라도 나는 줄은 안다』는 속담이 실감났다.온 집안이 텅 빈 느낌이다.
계원같은 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줄곧 그 생각을 하다 아리영은 자신을 의심했다.
이 집착은 정말 계원에 대한 것일까,행여 나선생에 대한 욕망이 「계원」이라는 외양을 빌려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괴로웠다.
도대체 나선생을 향한 관심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썩 남자답게 생긴 것도 아니고,썩 남자답게 믿음직한 것도 아니다.40대라는 나이에 비겨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그리 굳힌 것같지도 않고,생활력이 그리 실한 것같지도 않다.
다만 따스하고 염담(恬淡)했다.그런가 하면 의아스러울 만큼 섬세하고 비판적인 일면도 있었다.염담한 가운데 바늘처럼 빛나는날카로움.불가사의한 언밸런스가 아리영을 현혹했다.
그것이 일찍이 미스터 조에게서 받은 느낌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리영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긋난 인생의 톱니바퀴.멀다 못해 이제는 저물녘 그림자처럼 희미한 사람이 의식의 밑바닥에 이처럼 집요하게 자리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라비안 나이트』책을 산 것만 해도 그랬다.
쌍둥이 형제를 떠나보내며 그들에게 도움될 만한 책 여러 권을사서 선물했다.『아라비안 나이트』그림책도 그 중의 하나다.「신드바드의 모험」「알라딘의 요술 램프」「알리 바바와 40인의 도둑」얘기가 한데 모아져 있었다.어려서 신나게 읽 은 동화들이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하필이면 그 책을 골랐을까.
『아라비안 나이트』의 원제(原題)가 「알프 라이라 와 라이라」라는 아랍어요,「천 하룻밤」의 뜻임을 아는 이는 그다지 많은것 같지 않다.미스터 조가 알려준 지식이다.이것을 흔히들 「천일야(千日夜)이야기」라 한다고도 가르쳐 주었다.
1백80편의 얘기를 묶은 대전집인데 동화책에 나오는 것은 그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태반이 남녀의 농후한 사랑과 밀통(密通)정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사실도 일러주었다. 영역본(英譯本)『아라비안 나이트』를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그 덕에 영문 독해력이 꽤 늘었다.
요염한 아랍 미녀들에 관한 서술이 많았다.「균형잡힌 몸매,나긋나긋한 허리,매끄러운 살결,남자를 황홀케 하는 말소리를 지닌」여자들이었다.『의심방(醫心方)』이 꼽아보인 「호녀(好女)」,즉 「좋은 여자」와 흡사했다.어느 나라 어느 시대 나 남자들의성향은 비슷한 모양이다.그런데 한가지 모를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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