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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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29)『그러세.무슨 세빠지게일헌다구 초시 자리 하나라도 줄 거 아니고.』 『하세가와 놈 오나,망이나 잘 봐.』 『아,곡괭이 소리나 꿍꿍 내고 있으면 되지 뭘.』 지친 몸을 거친 돌벽에 기대면서 다들 자리에 주질러 앉았다.
『내가 일본사람 밑에서 목수 일 배울 때 얘긴데,그 주인이 늘 하던 말이 있어.』 『아니 잠깐.자네 목수였어? 먹통 들고따라다녔단 말이여.』 『사람이 말을 해도….따라다니다니.도목수는 못 돼도 집하나 세우라면야 뚝딱이지.』 흰소리치듯 대꾸하고나서 허씨가 말을 이었다.
『소탐대실이라는 거여.공연히 큰거 바라다가 작은 거마저 잃는다는 소리였거든.헌데 자질구레 한 거에 매달려도 그렇지만,자네처럼 그렇게 하늘하고 땅이 맷돌질 하는 날 안 오나,그것만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거여.』 『앗따.그런 자네는 어떤데.』 『나? 나야 뭐 십일지국이다.』 때가 지났다는 뜻이었다.
국화가 아름답기는 9월9일이 한창인데 10일날 국화라 함이니.
좋은 시절 한창 때가 다 지났다는 말이었다.
『왜놈 망하는 날이면 그놈들 물러갈 테고,목수장이야 나무나 깎고 있으면 되지 무슨 걱정.안 그래? 시어미 죽으면 누가 안방 차지하냐.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하는 거 아닌가.』 『어느 하세월에.』 『그래도,손으로 배운 거야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건데,우리네 농투산이 하고는 다르지.우리야 땅다 뺏기고 어디 가서 동냥질을 할까 막막한 사람이니께.』 『대장간 하는 놈 집에 식칼 변변한 거 없다네.』 『알쏭달쏭한 소리만 하고 있네,이 사람.』 최씨가 앞가슴을 벅벅 긁었다.
『남으나 모자라나,셈이 틀리기는 마찬가지여.』 『그건 그려.
남의 더운 밥.내 식은 밥만 못하지.그래서 하는 얘긴데,광에서인심 난다고 일본이 이꼴인데 우린들 언제 이놈의 굴 빠져나가 햇빛 볼 날이 있겠어.』 혼자 묵묵히 앉아 있던 지상이 일어서며 말했다.
『누가 오는데요.하는 체라도 합시다.』 부시럭거리며 일어서는데 굴 입구 쪽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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