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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만 하면 孝道? 천만의 말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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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요즘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인 영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는 노인의 병마를 다뤘다. 닥터 지바고(1965년)에서 라라로 출연한 줄리 크리스티가 어느덧 백발로 변해 치매에 걸린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노부부의 늘그막 삶을 보노라면 문득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 치매며 중풍에 대한 공포감도 남다르다. 보건가족복지부는 현재 40만 명인 치매 환자가 10여 년 뒤 70만 명으로 늘 것으로 본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본인도 물론 힘들겠지만, 가족들의 ‘24시간 수발’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서로가 지치면 결국 멀어질 수밖에(Away from) 없다. 보험회사들이 ‘실버상품’을 내놓고 간병비며 입원비를 보장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이유다.

마침 정부가 15일부터 노인 수발을 위한 ‘장기요양 보험’의 대상자 신청을 받는 중이다. 민간의 ‘실버보험’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천차만별이고 복잡해 헷갈린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많이 가입해줘 ‘효보험’이라고도 불리는 실버상품은 얼개부터 파악해야 헷갈리지 않는다. 생명보험사 상품을 보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간병보험’으로 치매와 일상생활 장해에 초점을 맞췄다. 일상생활 장해란 스스로 보행과 이동이 불가능하고 ‘옷 입기·식사·목욕·화장실 이용’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을 혼자서 못할 때를 말한다. 교보생명의 ‘실버케어’ 보험은 40~70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치매에 걸리면 일시금 250만원과 간병연금으로 10년간 월 50만원을 준다. <그래픽 참조> 이미 다른 보험이 있거나 치매에 특화해서 가입하려는 노인들에게 적절하다.

다음은 ‘전통형 효도보험’으로 사망보험금과 질병 진단비·입원비 등을 주 계약으로 하고 치매를 특약으로 섞은 것이다. 예컨대 동양생명의 ‘수호천사 효보험’은 재해로 숨졌을 때의 보험금(주 계약, 3000만원 지급)을 기본으로 치매 진단비(특약, 매월 100만원씩 36개월 지급)를 받을 수 있다. 기타 질병까지 폭넓은 ‘패키지 보장’을 고려하는 가입자들에게 맞는 상품이다. 손해보험사 상품은 상해사망과 입원비·치료비를 중심으로 치매와 간병비 특약을 넣은 상품이 많다.

보장은 좋으면서 조금이라도 싼 보험을 찾는 게 생리다. 손보사의 경우 치매·간병 보장액은 1000만~2000만원 범위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보험료는 2만~19만원대로 편차가 크다. 생보사는 연금 형식으로 수년에 걸쳐 간병비를 준다. 총 지급액은 손보사보다 많다. 하지만 보장액과 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보장의 질(質)’에 따라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치료비며 입원비 같은 특약을 어떻게 섞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보장을 설계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보장이 뭔지부터 헤아리고, 상품별로 어떤 특약이 깔려 있는지 파악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예컨대 AIG손보의 ‘명품 부모님 보험’이 제시한 ‘가입 사례’를 보면 60세가 치매간병비(2000만원)+상해의료비(1000만원 한도)를 주계약으로 하고, 심장·뇌혈관 질환 같은 7대 질병 입원비(1000만원)를 넣을 때 월 납입금은 2만7810원이다.반면 현대해상의 ‘100세 행복보장 보험’이 표준으로 제시한 질병사망비(3000만원)+치매간병비(1000만원) 등을 택하면 60세가 내는 보험료가 19만원에 이른다. 현대해상은 “손보사 의료비는 실제 발생한 치료비를 지급하는 ‘실손보상’”이라며 “행복보장 보험은 치질 등을 뺀 대부분의 치료비를 보장하는 포괄주의 방식이어서 제한적인 열거주의보다 실속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치매만 해도 보험사마다 규정이 다르다. 그린화재의 ‘그린닥터 간병보험’은 90일 이상 치매 증상이 계속되면 2000만원을 준다. 다른 손보사들이 180일의 경과 기간을 두는 것에 비해 유리하다. 금감원 보험계리실 김동성 팀장은 “치매 보험 중에서도 자연적인 기질성 치매는 보장하지만, 사고로 발생한 외상성 치매는 보장하지 않는 상품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권했다. 머리를 다쳐 치매에 걸리면 보장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푸르덴셜생명 우리지점의 노승욱 라이프플래너는 “치매와 간병도 등급이 있다. 보험사에서 심사할 때 간병인이 항상 붙어 있어야 할 경우, 간헐적으로 붙어 있는 경우 등으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보험금이 본격적으로 지급되기 시작하면 민원이 많이 불거질 것”이라고 했다.iHAPPYi의 이택주 재무설계사는 “노년이 될수록 발생 확률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재해보다는 질병”이라며 “특히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주요 질병에 대해선 적으나마 진단비를 확보하는 게 좋고, 이어서 수술비·입원비를 확보하는 방법이 낫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보험 가입이 어려워지는 55세 이전에 든든한 보장을 준비하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실버보험을 고른다면 보험료가 조금 비싸도 전통형 상품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푸르덴셜생명 노승욱 라이프플래너도 “종신보험을 주계약으로 하고 특약으로 간병연금을 받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대한생명의 ‘라이프 플러스 케어 보험’이 비슷한 상품이지만, 종신보험이 들어 있는 만큼 보험료가 비싸다. 40세에 가입해도 월 22만원이나 든다. 이런 방식을 활용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입해야 유리하다는 얘기다.

미래에셋생명 김한수 직할지점장은 “기간도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평균 수명이 계속 길어지고 있어 이왕이면 80세, 90세까지 보장되는 보험이 낫다는 얘기다. 특히 가입보험의 만기가 찾아온 이후에도 생존해 있다면 재가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요즘엔 ‘백세(百歲) 보험’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16일 치매나 생활장해 때 간병비와 함께 상해의료비 등 17개 특약을 100세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았다. 정부의 노인 요양보험에서 해결할 수 없는 본인부담금과 소득보상금을 특약으로 보완할 수 있다.

보험사가 알리지 않는 진실
TV를 틀거나 신문을 넘기면 등장하는 게 보험 광고다. ‘상해·질병 가리지 않고, 아플 때마다, 다칠 때마다…’란 표현은 기본이다. 왠지 눈길이 가면서도 의심쩍다. 사실 그동안 가입자를 현혹하는 광고가 판쳐 금융감독 당국의 경고도 여러 번 받았다. 금감원 김동성 팀장은 가입자들을 울리는 실버보험 사례를 꼽아 달라는 주문에 ‘무심사(無審査)’ 보험을 지적했다.

TV를 보면 유명 탤런트가 나와 “노인도 아무런 심사 없이 전화만 하면 무조건 가입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김 팀장은 “질병이 아닌 사망보험금을 보장하는 상품”이라고 했다. 보험사의 부담이 큰 질병은 보장하지 않고, 대신 가입자가 숨지면 보험금 1000만원을 지급하는 일종의 ‘장례보험’이라는 것이다. 김 팀장은 “광고를 보면 마치 노인 자신이 혜택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며 “튼튼한 노인이라면 다른 보험에 가입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연맹도 무심사 보험이 가입자들을 울린다며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광고에선 주계약과 특약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아 주계약만으로 모든 보장이 되는 것처럼 오인시키는 사례도 많다. 약관을 꼼꼼하게 읽고 설계사에게 꼬치꼬치 보장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은퇴자협회가 조사했더니 자녀가 가입해 준 효도보험 약관을 부모에게 보내 가입 내역을 잘 알 수 없도록 한 얌체 상흔도 있었다.

이택주 재무설계사는 “손보사 실버보험은 상대적으로 노인층에서 발생 확률이 작은 상해·골절·화상 등을 많이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들이 ‘기가입자들도 조금만 보험료를 더 내면 몇천만원을 더 받는다’고 광고하지만 보험료는 철저히 영리 관점에서 책정된다”며 고액 보험금에만 눈을 팔면 안 된다고 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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