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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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28)1941년 3월 말일 규슈 지방에 최초로 방공훈련이 실시되었다.일본은 그렇게 전투기에 의한 폭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비해 나가고 있었다.그리고 그해 12월 일본은 펄 하버를 기습 공격하면서 미국과의 전 쟁에 들어갔다.이날 오후5시,경계경보가 발령되었고 이 비상조치는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계속되었다.
『남산골 샌님 역적 바라듯이 고런 소리만 해대지 말아.너도 살고 나도 살아야지,안 그려? 너 죽고 나 살아서 무슨 재미여.』 『부처님이 따로 없었네.』 흙더미와 돌을 퍼담고 있던 허씨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땀이 흐르는 얼굴에 눈만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이봐들.여기 생불 나셨어.자네 죽으면 아마 사리가 가마로 쏟아질 거구먼.』 『이 사람이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네.』 옆으로 다가온 최씨가 곡괭이를 옆으로 던져놓으며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앗따.사람 더워서 미치겠구먼.무슨 힘에 부처님은 찾고 지랄들이여.』 『거지 피해가려다가 도둑놈 만난다더니 내가 그꼴이네.아니 다짜고짜 지랄은 또 무슨 언사여.』 『입방아 찧을 기운들이 있냐 말이여.』 『무슨 기운인들 없을까.벌여만 놓아 보라지.동짓날 그믐밤이라도 짧지 짧어.』 『정말 써 붙일 거라고는 놀랠 노짜 밖에 없구만.이 사람들 땅은 안 파고 어디서 동삼만 캐 먹고 다녔나.』 허씨가 허허거리며 웃었다.최씨가입맛을 다셨다.
『누가 허가 아니랄까 허허거리기는.』 허씨가 닳고 닳은 삽을든 채 다가섰다.
『아니 그럼,자네는 벌써 남자 구실 하기는 여엉 글러버렸는가?』 최씨가 침을 뱉으며 씨부렁거렸다.
『젠장헐.서긴 선다 왜.내 아침마다 아직도 × 서는게 희한하다 싶은 사람이다.뭐 잘못됐나.』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 탓도있었지만 환기가 안 되며 후끈거리는 굴속이라 다들 웃통을 벗어부친 차림이었다.겨우 사타구니를 가린 훈도시 하나씩을 차고,거의 맨몸이 되어 그들은 땅을 파고,흙을 짊어져 나르고 있었다.
최씨가 털썩 땅바닥 에 퍼질러 앉았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좀 쉬었다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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