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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랑을 담은 토스카나의 목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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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03면

이탈리아 북서부 토스카나 지방의 해안가에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라는 휴양 도시가 있다. ‘대리석으로 된 요새(Fort of the marbles)’라는 그 이름처럼 멀리 산꼭대기에 앉은 하얀 대리석이 보이는 곳이다. 16세기 대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작품에 쓸 대리석을 얻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부호들이 휴가철이면 몰려드는 이 도시는 인구가 9000명 조금 넘는 정도지만 400개가 넘는 레스토랑이 있다. 해질 무렵이면 은발의 부부들이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노닌다. 소설가 토마스 만과 조각가 헨리 무어가 휴식을 위해 자주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8년 만에 내한하는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이 해안가에 안드레아 보첼리(50)가 살고 있다. 여기서 차로 1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 라야티코(Lajatico)에서 태어난 보첼리는 4년 전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 옅은 분홍색인 3층짜리 집에 두 아들 아모스(13), 마테오(11)와 함께 산다.

지난해 10월 그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을 때 이 집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맨발로 마중 나온 그는 “집에서 주로 작곡이나 연습을 하느냐”고 묻자 1층 창가에 놓인 야마하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약간 느린 속도로 쇼팽의 연습곡 ‘혁명’을 연주했다. 화려한 왼손 패시지가 약간 둔했지만 음악은 노래하듯 유려하게 흘렀다. 인터뷰 진행 때문에 영국에서 날아온 매니저가 예정되지 않은 연주에 깜짝 놀라며 “그만 하라”고 말려 이내 연주가 끝났다. 보첼리는 피아노에서 일어나며 “음악은 항상 내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보첼리에게 음악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첫 무대를 “가족이 모인 벽난로 앞에서 노래했을 때”로 기억한다. 그는 집 곳곳에 피아노 3대와 관악기·현악기를 비롯해 다양한 나라의 전통악기를 모아놨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집안 곳곳 발길 닿는 곳에 멈춰 그 악기들을 연주해 음악을 만든다. 1, 2층을 오갈 때도 노래를 하며 끊임없이 멜로디를 만들었다.

노래를 숨쉬듯 하는 보첼리는 가족도 끔찍하게 아낀다. 그의 집 곳곳에는 두 아들과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응접실 한쪽 벽은 아들 둘의 흑백사진으로 ‘도배’했을 정도다. 아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보첼리는 팔을 뻗어 그를 안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들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키스하는, 영락없는 이탈리아 남자다.

2000년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슬픔을 담아 만든 노래 ‘Mai piu cosi lontano(이제 다시 헤어지지 말아요)’는 큰 인기를 모았다. 한국에서는 TV에서 맞선을 보는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처럼 그가 히트시킨 노래들에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의 충만한 사랑이 들어 있다.

오페라 무대에도 서는 성악가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발성이 보첼리의 인기에 한몫했다. 과장되지 않은 감정이 청중의 가슴을 울린다. 전 세계에서 11년 동안 6000만 장의 음반을 팔아치운 힘도 여기에서 나온다. 범(汎)클래식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록이다. 스티비 원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사라 브라이트만,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공연하며 세계에서 가장 몸값 높은 테너로 떠올랐다. 해외 공연을 다닐 때는 10명 남짓한 스태프를 전세기에 태울 만큼 ‘거물’ 인사가 됐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시골’ 토스카나의 하늘과 햇살을 담고 있다. 언덕이 많고 하늘이 높으며 태양은 뜨거운 곳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음악이 낙천적이고 밝은 반면 중북부의 토스카나는 좀 더 힘 있고 마음이 느껴지는 노래가 어울린다. 보첼리는 “토스카나의 바람과 햇살,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 내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12세에 축구공에 맞는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정확하게 토스카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빅스타가 뉴욕ㆍ런던 같은 대도시를 마다하고 50년째 토스카나에 머무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토스카나의 남자’가 22일 오후 8시 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다.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등과 함께 노래한 2000년 ‘수원국제음악제’ 이후 8년 만의 내한이다. 이탈리아의 민요와 오페라 아리아, 팝페라 작품 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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