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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 쏘아올린 우주여행의 설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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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04면

한국 최초의 우주여행자 이소연 박사는 우주정거장에 두 가지 스카프를 가지고 갔다. 하나는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열지도’가 프린트돼 있고, 다른 하나에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적혀 있다. 그녀는 우주식품으로 개조된 김치·된장국·수정과 등으로 한국식 만찬을 차리면서 자우림의 노래 ‘일탈’을 틀어놓는다. 이 박사는 “우주정거장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는 당찬 기백을 보여주었다. 기자회견에선 재즈곡인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불렀다. 우리나라도 우주에 한발을 내디뎠다. 이소연씨는 한국인의 오랜 꿈을 당당하게 두 어깨에 싣고 날았다.

우주여행은 인류의 오래된 꿈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촛농으로 커다란 날개를 붙이고 태양 가까이 날아갔던 ‘이카루스’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달로 날아간 ‘항아’와 ‘가쿠야 공주’의 전설을 생각했다. 한국의 고조선, 고구려 건국 신화에도 우주여행의 꿈이 담겨 있다. 환웅은 천제의 아들로 백두산에 내려와 치세하다 단군을 낳았고, 해모수는 오룡거를 타고 천상과 지상을 오가다 주몽을 잉태시켰다. 호랑이에게 쫓기다 금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 등 민담도 전해온다.

1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틸2 소설『달의 바다』일러스트3 소설『용의 이』일러스트

20세기 이후 인류는 실제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오르기 위해 엄청난 재화를 투자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우주여행이 실현되었다. 그렇다고 우주과학과 우주산업이 당장 인간의 삶에 물질적 충족이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주여행의 꿈은 생리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적 욕망이라는 말이다. ‘뜬구름 잡는다’는,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주로 예술과 일맥상통한다. 경제적·과학적 의미보다는 문화적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우주여행의 꿈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제공한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 없는 것일까?”라던 화가 반 고흐는 찬란한 색채로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의 별들을 그렸다. 1903년 조르주 멜리에스는 최초의 특수효과 영화 ‘달세계 여행’을 만들었고 68년 아서 클라크는 과학소설의 걸작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썼다. 비틀스의 노래 ‘우주를 가로질러’, 게임 ‘파이널 판타지’들,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메이션(1998),

깐따삐야 별에서 온 도우너와 ‘아기 공룡 둘리’ 같은 만화 등 우주여행이라는 테마는 문학·영화·만화·게임·공연·음악·미술에 이르기까지 문화 콘텐트 전반에 걸친 하나의 장르이자 트렌드이다. 실제 우주여행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지만 우주시대에 어울리는 ‘우주문화’를, ‘우주문화상품’을 개발하는 일이 더 높은 수준의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한편 우주여행의 꿈 이면에는 커다란 어두움도 자리하고 있다. 전쟁이 그것이다. 우주산업은 가장 순수한 꿈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가장 잔인한 면을 드러내며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개발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2006년 뉴욕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제라르 드그루의 책 『달의 뒷면(Dark Side of the Moon)』은 장대하고도 미치광이 같은 달 탐험 노력, 미국 우주여행의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집요하게 쫓은 문제작이다.

달 탐사를 위해 투자된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은 실질적인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으며 냉전시대의 편집증적 군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흔히 우주과학이 실생활에 남긴 부산물로 선전되는 세라믹·벨크로·테플론 등의 신소재도 실은 우주여행과 아무 상관없이 이미 오래전에 개발된 것들이었다고 폭로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우주를 여행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순수한 꿈으로서 우주여행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낙관적인 답도 가능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떠올려 보자. 어느 날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에게 한 아이가 다가온다. “어린 왕자는 자기 몸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별에서 살고 있었는데, 친구를 사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종사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 그리고 그 별을 떠나서 한 여행에 대해 매일 조금씩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 그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어” 등 명구를 남긴 이 우정과 동심에 대한 동화는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결국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당분간은 우리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달나라도 가고 별들 사이를 나는 우주비행사가 부쩍 많이 등장할 듯하다. 완구와 어린이 책 시장에서도 우주 관련 아이템이 인기라고 한다. 어찌 보면 아이들은 아직 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존재들이자 우리의 미래인이다. 외계인이며 우주여행자라는 말이다. 누구나 한때는 아이였으니 우리 모두는 결국 우주여행자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주여행의 꿈은 그냥 꿈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내는 우리의 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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