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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우주인 배출] 우주개발 '신호탄' 쐈다

중앙일보

입력

19일 오후 5시 38분(이하 한국시각), 이소연(29) 씨를 태운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 TMA-11호가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 착륙하는 것으로 한국 최초 우주인의 12일에 걸친 '우주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는 이번 프로젝트로 세계 36번째 우주인 배출국, 7번째 여성우주인 배출국이 됐고 이 씨는 세계 475번째 우주인이자 49번째 여성우주인,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무카이 지아키 씨에 이어 2번째 여성우주인이 됐다.

이 씨의 우주비행은 러시아 우주선의 한 자리를 빌려 우주에 한 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가 우주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전국의 가정으로 생생하게 전달된 이 씨의 우주임무 수행 모습은 그동안 우주를 일부 선진국의 전유물로만 여겨온 우리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주인 배출사업은 '260억원의 세금이 들어간 우주관광'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우주개발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과학대중화 이벤트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씨가 수행한 우주과학실험의 의미도 작은 것은 아니다. 최종 성과는 실험결과 분석이 끝나야 알 수 있지만 학계는 초파리 노화유전자 검색과 제올라이트 합성,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의 결정성장 실험 등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우주인 배출사업 과정에서 우주실험장치 개발 및 제작 노하우, 우주식품 기술 등을 확보해 앞으로 선진국들의 유인 우주개발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도 큰 성과다.

특히 이 씨가 큰 주목을 받으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고 대통령이 나서 강력한 우주개발 의지를 밝힌 것도 항공우주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유인 우주개발시대 개막 =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으로 우리나라의 유인 우주개발시대가 활짝 열렸다.

정부가 2000년 12월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에 우주인 양성계획을 반영한 지 7년여만에, 2006년 과학의 날(4월 21일) 우주인 공모가 시작된 지 2년만이다.

하지만 세계 36번째 우주인 배출국이라는 성적표는 2003년 유인우주선을 발사한 중국이나 지난달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실험모듈 '키보'를 쏘아 올린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과학계에서도 우주인 탄생을 내세울 만한 성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로 여기고 있다.

특히 과학계는 우주인 탄생이 우리나라 우주개발사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과학대중화를 통해 위기에 처한 한국 과학기술의 중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60억원이라는 적지않은 예산이 '우주관광'으로 비칠 수도 있는 우주인사업에 투입된 것에 대해 과학계가 비교적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 이덕환 주임교수는 "우주인 탄생은 우리가 우주개발과 같은 선진국형 거대과학에 본격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인사업은 특히 과학대중화 측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씨의 우주임무 수행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우주와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그가 앞으로 수행할 '과학홍보 대사'의 역할은 과학대중화 측면에서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우주인 탄생은 또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사업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항공우주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5년까지 독자적 우주개발 능력을 확보해 세계 10위권 우주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항공우주개발을 추진해왔다.

2017년까지 300t급 발사체를 자력으로 발사하고 2020년에는 달 탐사 궤도위성을, 2025년에는 달 탐사 착륙선을 각각 쏘아 올리는 등 우주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우주인 탄생을 계기로 상당히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ISS의 이소연 씨와 화상통화 생방송에서 "21세기는 우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며 "2017년에 1.5t급 위성발사체를 개발하고 2020년에는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달 탐사 위성을 발사해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계획을 앞당겨 보려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같은 대통령의 항공우주산업 육성 의지를 반영해 10년 안에 독자적 우주발사체 개발능력과 지구 정밀관측이 가능한 실용위성 독자개발 능력을 확보해 7대 우주강국에 진입하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주관광객' 논란과 향후 과제 = 이소연 씨가 탑승한 소유스 우주선이 발사된 뒤 국내에서는 이 씨가 우주인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미항공우주국(NASA)이 이 씨를 우주비행 참여자(spaceflight participant)로 분류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논란이 가열되고 '우주관광객'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NASA는 ISS 탑승자 가운데 ISS 건설에 참여중인 16개국 출신 우주인 외에는 모두 '우주비행 참여자'로 분류하고 있으며 우주여행사인 '스페이스 어드벤처'는 지금까지 자사가 배출한 우주여행객 5명을 '우주비행 참여자'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측은 특정한 전문 임무를 부여받아 임무 수행에 필요한 훈련을 받고 우주비행에 나선 우주비행 참여자와 개인적인 비용을 지급하며 단순 우주관광에 나선 우주비행 참여자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우주인'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없을 뿐 아니라 논란이 생긴 근본적 원인이 우리에게 유인우주선 자체 발사 능력이 없다는 데 있는 만큼 논란의 초점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옮기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최초 우주인'은 언제가 됐든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므로 이 씨가 수행한 우주임무의 과학적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우주인 배출사업의 긍정적 효과를 최대한 살려 우리나라가 항공우주개발 분야의 강국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주인 배출사업이 처음부터 유인우주기술 습득을 위한 국제협력과 함께 우주인의 활동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기여하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된 만큼 이에 대한 충실한 계획도 요구된다.

항공대 허희영 교수가 우주인 배출사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4천780억원으로 추정했지만 이는 우주인 배출사업이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우주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국가적인 우주개발 자산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우주개발은 당장 경제적 효과를 내기 어려운 기초과학과 같은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선뜻 투자에 나서가 어려운 분야다.

그러나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우주개발 기술은 첨단 바이오ㆍ나노ㆍ에너지ㆍ환경ㆍ의학 등의 분야와 결합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이 우주공간과 달을 적극활용하는 계획을 추진되면서 우주개발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우주인 탄생이 1회성 행사나 과학대중화 이벤트로 그치지 않도록 학계, 기업과 협력해 우주개발과 항공우주산업 발전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효율적인 국제협력전략도 '필수' = 이번 한국 최초 우주인 사업은 향후 우주 선진국들과 어떤 협력 전략을 세워야 할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국제 우주정거장(ISS)으로 가는 17번째 원정인데다, 이 씨가 우주비행사가 아닌 과학실험 전문가로 참가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각국 언론과 관련 업계도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IT 강국인 한국이 우주에 사람을 보냄으로써 우주 산업 발전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한국이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수준에 맞는 우주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선진 우주과학기술을 이전받기 위한 대외 전략이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돼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우주 산업이 곧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점과 상대국들이 첨단 기술 보호차원에서 우주과학기술 부문의 기술이전을 꺼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국방 및 외교.안보 차원의 폭넓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우주과학 협력 사업의 차질없는 진행과 함께 새로운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 로켓 발사체 제작 업체인 흐루니체프사의 블라디미르 네스테로프 사장은 "한국의 우주과학 발전 속도에 놀랐다"면서 한국 정부에 지속적인 교류 협력을 희망하기도 했다.

일단 2004년 한국과 '우주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러시아와 협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번 우주인 사업 성공으로 현재 흐루니체프사와 진행 중인 발사체 등 관련 협력 사업도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한.미 우주협력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우주협력 대상 국가는 정치적.외교적 친소(親疏) 관계를 떠나 한국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이고, 상대 국가가 얼마나 기술 이전에 협조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은 이번 소유스 발사에서 갑(甲)'아닌 '을(乙)'의 입장에서 우주 약소국의 설음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에 발사과정을 지켜 본 한 정부 관계자는 "우리 기술로 만든 우주선을 타고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 "우주 산업의 자립 기반 확보가 얼마나 절실한 지 피부로 느겼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계약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공동 지분 투자를 통한 해외 유명 항공 우주업체와 합작 회사 설립도 검토해 볼 만하다.

또 우주 무대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ISS 건설 등 다국적 형태로 운영되는 우주협력 사업에 동참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우주 산업은 에너지, 환경, 방송통신, 의학, 식품영양학, 생물학, 화학 등 응용분야가 많고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 또한 크다.

따라서 우주 선진국들이 우주선 개발 및 발사에 몰두하고 있다면 한국은 우주 산업의 틈새 시장을 겨냥한 제품의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자력 기반을 다질 때까지 선진국의 기술 이전에 의존해야 한다면 해당국의 관습과 언어, 국제규범(프로토콜)을 잘 아는 우주 행정 전문가도 기술 인력 양성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이번 우주인 사업에 참여한 한국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발사 한 달여를 앞두고 탑승 우주인이 교체되는 불상사는 최소한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우연 최기혁 우주인사업단장은 "우주 관광객이라니, 돈 잔치라니 하는 말이 결국 우리의 과학기술이 뒤떨어져서 생긴 논란이 아니겠냐"며 "중단은 있을 수 없다. 자동차는 정지해 있을 때보다 진행 상태에서 방향을 바꾸기 더 쉽다. 우주 선진국들과 협력하면서 위성이든 발사체든 지속적으로 쏟아 올릴 때 우리의 우주 산업도 가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ㆍ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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