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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카스트로 육성으로 들어본 ‘혁명가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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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피델 카스트로, 마이 라이프
피델 카스트로·아냐시오 라모네 지음,
송병선 옮김
현대문학,
713쪽, 3만2000원

“쿠바 최고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방에는 남미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 시몬 볼리바르, 수크레와 함께 미국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지은이는 카스트로와의 첫 인터뷰를 하던 날, 집무실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반미 좌파의 상징인 카스트로의 방에 링컨의 흉상이라니. 2003년 1월말 시작해, 2005년 12월까지 여러 차례 이어진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그는 사회주의자나 노동운동가보다 쿠바 독립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를 더 많이 인용한다.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반식민주의자에 가깝다.

미국을 겨눈 비수 같이 생긴 쿠바에서 게릴라전으로 친미정권을 무너뜨린 카스트로. 그는 남미 좌파의 아이콘인 동시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를 관찰한 지은이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권력자임에도 스파르타 사람처럼 검소하게 산다. 그의 정적들도 그가 권력을 이용해 부를 쌓지 않은 인물임은 인정한다. 쿠바 혁명 당시 절친한 동료였던 군사영웅 아르날도 오초아 장군을 부패 혐의로 사형까지 처한 것도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쿠바가 여전히 빈곤함에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인터뷰는 묵은 궁금증도 풀어준다. 그는 자신의 상징이 된 긴 수염이 대해 “과거 게릴라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아끼려던 이유도 있었고, 사실 수염을 깎을 도구도 없어 자연스럽게 기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자였기 때문일까. 카스트로는 남미 좌파혁명의 또 다른 상징이던 체 게바라에겐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드러냈다. 젊어서 함께 만난 순간에 대한 반추는 아름다웠지만, 노선을 둘러싼 갈등에선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많은 해를 끼쳤다”며 매서운 비판의 소리를 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있다. 카스트로는 어린 시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10달러 지폐를 갖고 싶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으며 “성적표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전 과목에서 만점을 맞은 것처럼 성적표를 조작하기도 했다”라고 악동 시절을 회상했다. 우익 지주의 아들로 보수적인 종교계열 학교에 다녔음에도 아바나 대학에 진학한 뒤 좌파가 된 이유에 대해 “선천적으로 반항아였다”라고 설명했다.

1959년 혁명을 일으켜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전복한 뒤 올 2월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49년간 권좌를 지킨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81). 그는 녹색 군복, 얼굴을 뒤덮은 수염과 큼지막한 시가,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 등으로 숱한 화제를 일으키며 쿠바를 통치했다.

지은이가 가까이에서 본 카스트로는 수줍고 교양이 있었으며, 정중했다. 하지만 권위를 부정하지 못하는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고독했다. 아주 친한 친구도,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다.

바로 앞에서, 육성으로 그의 삶을 들어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회고록 성격이 강하다. 카스트로는 많은 연설을 했지만 인터뷰는 50년 동안 네 명에게만 허락했다고 한다. 그는 49년간 권좌를 지키다 2006년 7월 건강이 악화하자 권력을 동생인 라울 국방장관에게 넘겼으며 올해 2월 권력승계 작업을 마쳤다.

지은이는 1999년부터 프랑스의 권위 있는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비정부기구인 미디어 워치의 회장이기도 하다. 원제 『Fidel Castro : Biografia a dos voces』.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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