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6. 전화 프러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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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젊은 시절 길옥윤씨.

가끔 걸려오던 길옥윤 선생의 전화가 점점 잦아졌다. 얼마 뒤부터는 거의 매일 밤 길 선생이 내 숙소로 전화를 했다. 나 역시 길 선생과 통화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일과처럼 됐다.

그와 통화하면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 쓸쓸하고 헛헛했던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 더욱이 이미 우리나라 연예계에서 확고 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톱스타급 가수들 사이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하고 있던 우리에게 전화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두 사람만의 사적 통화이다 보니 동료 가수나 연주자들에게 서운했던 속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그러는 사이 은근히 정도 들었다. 일과를 마무리하는 통화는 우리 두 사람에게는 데이트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런 마음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마치 중요한 용건이라도 있다는 듯이 매일 밤 전화해 몇 시간이고 주변만 빙빙 도는 알맹이 없는 말만 하고 끊는 길 선생도, 그렇게 매일 밤 계속되는 통화가 무엇인가 특별한 감정을 의미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나도 짐짓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길고 지루했던 겨울의 끝을 알리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던 밤이었다.

“패티가 떠나기 전에 내가 곡을 하나 주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한번 들어보겠어요?”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었던 길 선생은 그때까지도 나에게 꼭 존댓말을 썼다. 좀처럼 자기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일이 없던 길 선생은 그날도 그렇게 특별한 용건 없는 통화 끝에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요? 가사가 어떤데요?”

내가 반색을 하고 묻자 길 선생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조용조용 노랫말을 읽어주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면은 꿈 속의 사랑

사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말아….

전화기 너머 길 선생의 나지막한 음성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 프러포즈인데?”

길 선생이 읽어주는 노랫말을 듣는 순간부터 든 생각이었다. 1966년 2월, 어머니 병 간호를 위해 2개월 동안 휴가를 받아 일시 귀국했으니 예정대로라면 나는 4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이었고, 그와 나는 5월이 오면 헤어질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숫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길 선생은 그 노랫말을 끝까지 다 읽어주고 난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랫말이 정말 좋은데요. 내일 만나면 다시 얘기하죠.”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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