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 펜화기행] 승보 사찰 송광사, 큰 깨달음의 입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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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송광사, 종이에 먹펜, 43Χ60cm, 2008.

인간 세포를 복제하여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미세한 세포에 인간의 설계도와 제조 방법, 지능 등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저장 능력이 얼마나 더 발달해야 비슷한 수준이 될지 전문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니 인간과 신의 능력 차이라고 보아야겠지요.

불경 중에 가장 수준이 높다는 화엄경을 210자로 압축한 법성계의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는 ‘작은 티끌에 온 세상이 담겨있고, 모든 티끌은 모두 똑같다’라는 말입니다. 저장 능력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집니다.

이 세상의 본질인 불성(佛性)은 시간과 공간, 수량과 질량 등에서 3차원 존재인 지구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한데 깨달은 스님만이 알게 된답니다. 다차원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깨달은 스님은 ‘내가 곧 너’‘나비와 내가 하나’라는 설명이 불가능한 말을 합니다.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큰 스님, 즉 국사(國師)가 16명이나 배출된 절이 승보 사찰 송광사(松廣寺)입니다. 그래서 송광사에는 대웅전 뒤에 스님들의 수행 공간을 두었습니다. 불보 사찰인 통도사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고, 법보 사찰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국내에서 건물이 가장 많았다는 송광사는 전란으로 많은 불당이 불타 없어졌으나 절 입구의 우화각과 육감정 누대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개울을 막아 만든 연못에 장주석을 세우고 누마루를 덧붙인 육감정과 우화각이 물속에 비친 모습은 송광사의 백미입니다. 1930년대와 다른 점은 육감정의 난간이 계자각으로 바뀐 정도입니다. 신문의 그림과 현장을 비교하여 달라진 부분을 찾아보세요.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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