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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갈 곳은 없어요, 문제는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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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오솔길.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휠체어투어 박호석 대표.

여행은 본능이다. 딱히 이유가 없다. 누구나 ‘그냥’ ‘무작정’ 떠나고 싶어 한다. 단지 시간과 돈이 문제일 뿐. 한데 시간도 있고 돈도 있는데 도무지 여행할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이 있다. 배려가 부족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섬’에 갇혀 사는 사람들. 바로 장애인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잠깐 외출도 힘든 마당에 여행이 다 뭐냐”고. 하지만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의외로 많은 장애인이 전국 곳곳,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여행을 한번 하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글=김한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1 “단체견학 등을 제외하고 순수 여행객은 한 달에 5~6팀뿐입니다.” 장애인 전문여행사 휠체어투어(www.wheelchairtour.co.kr, 02-736-7047) 박호석 대표는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물론 돈도 문제가 되겠지요. 사회생활이 여의치 않은 분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까지 여행을 못 가는 건 정보가 부족한 탓이에요. 과연 갈 수 있을까, 가면 제대로 놀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거죠.”

박 대표는 장애인 여행사 대표이기 전에 그 스스로가 장애인(소아마비 2급)이다. 여행사를 차리게 된 것도 자신의 신혼여행 경험이 계기가 됐다. 2002년 결혼을 하고 호주·뉴질랜드로 갔다. 비장애인 단체 패키지를 따라가는 바람에 ‘엄청’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장애인이 여행하기는 한국보다 더 낫지 싶었다. 계단 한두 개만 있어도 경사로나 휠체어 리프트가 있었다.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불편한 시선도 없었다. 자유로웠고 홀가분했다. 이런 경험을 다른 장애인들과 나누고 싶어 여행사를 차렸다.

휠체어투어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만 대상으로 상담을 받았다. 상품은 철저히 박 대표가 직접 답사를 다녀온 곳만으로 꾸몄다. 관광지는 물론 숙소·식당까지 장애인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다. 현지 가이드에겐 장애인을 상대하는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어 ‘사전 교육’도 시켰다. “일반인·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고 불러라.” “휠체어를 혼자 밀 수 있으면 도와주지 마라.” ….

이용자가 적어 수지 맞추기는 아직 멀었다. 2006년 문을 연 이래 계속 적자다. 전주에서 다른 사업으로 번 돈을 서울 여행사 사무실 운영하는 데 다 쏟아붓고 있다. 박 사장은 그래도 좋단다. 괌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에 패러세일링을 했다는 1급 지체장애인, 수화·필담으로 가이드를 받으며 일본에서 행복한 허니문을 보냈다는 청각장애인 부부…. 박 대표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행후기를 보면 흐뭇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집 나가면 고생인 것은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정도 불편만 감수하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 대표의 당부다.

#2“(장애인이) 한 번 두 번 여행을 다녀보면 그때부턴 자신감이 생깁니다. 낯선 곳에 가도 당황하지 않고 불편한 곳에 가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갑니다. 주위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처음에 몇 번 돕는 것뿐이죠.”

대한장애인체육회 후원 여행사인 여행박사(www.tourbaksa.com, 070-7017-9732) 양정숙 실장의 얘기다.

양 실장은 장애인 사회에선 꽤 알려진 ‘유명 인사’다. ‘한국의 애덤 킹’이라고 불리는 김세진군의 어머니. 양쪽 무릎 아래와 오른쪽 손가락 세 개가 없이 태어난(장애1급) 세진군을 입양해 국가대표 장애인 수영선수로 길러냈다. 김군은 장애인 세계 최연소로 10㎞ 마라톤을 완주했고, 지난해 독일 세계선수권 수영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양 실장은 김군을 ‘씩씩하게’ 길렀다.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가지 않는 것이지. 좀 넘어가고 좀 돌아가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습니다.” 사정 모르는 장애인이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얘기건만, 양 실장은 거침이 없다. 감히 그럴 수 있는 건 그녀 역시 장애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세진군을 키우며 자의반 타의반 장애인 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본인이 장애인이 될 뻔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 때 기계체조를 하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졌단다.

기내 휠체어<上>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버스.

장애인 여행 일을 하게 된 건 2005년부터다. 사회환원 차원에서 장애인 여행 보내주기 사업을 한 여행박사를 도와주다 아예 눌러앉았다. 장애인 여행을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역할을 한다. 휠체어투어와 달리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 상품도 취급한다. 단순히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일종의 ‘여행 코치’다.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여행지를 추천해 주는 건 기본. 무엇을 챙겨가야 하는지,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 소풍 보내는 엄마처럼 꼼꼼히 일러준다. ‘휠체어 예비 타이어를 챙겨 가라’ ‘여행지 주변 가까운 병원 연락처를 적어 가라’…. 시각장애인의 경우 ‘몇 시 방향에 화장실, 몇 시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식으로 아예 MP3에 녹음을 해주기도 한다. 가족이 동행할 경우 팁만 주지만 중증 장애인의 경우 직접 따라가 챙겨주기도 한다.

여행에 대한 양 실장의 생각은 박호석 대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이 무서우면 수영을 못하고 사회가 무서우면 독립을 못합니다. 떠나는 것이 무서우면 여행 역시 못하는 거죠.” 역시 과감히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주문이다.

장애인 해외여행 Tip

■ 10시간 넘는 비행은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다. 일단 4시간 안쪽으로 갈 수 있는 곳부터 시작하자.

■ 장애 유형과 정도에 맞는 여행지, 상품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면 사이판·괌 여행은 지루할 수 있다. 차라리 볼거리 많은 일본 쪽이 낫다.

■ 인천공항까지는 장애인 콜택시나 공항철도로 이동한다. 승용차를 가져올 경우 주차 후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공항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장애인을 위한 한가족·패밀리 서비스 제도를 이용하면 체크인 때부터 목적지에 도착해 마중객을 만날 때까지 특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기내 휠체어와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준비돼 있는 항공기인지 미리 확인하자. 좁은 기내에선 오가기가 불편하다. 기내식은 가능한 한 조금만 먹자.

■ 여행은 같이 즐겨야 맛이다. 가족 등 비장애인이 함께 가더라도 현지에선 전문 도우미의 서비스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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