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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豆滿江너머 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재미동포인 한 정신과의사의 방북(訪北)체험 한토막.90년4월그는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재미동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에 끼어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대부분 50대였던 재미동포들이 수십년간 헤어졌던 부모 형제를상봉하는 장면에서 그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대체로 북한동포들이껴안고 흐느끼고 지난 세월을 원망하는 넋두리를 쏟아내는등 감정의 표현이 많았던 반면 미국에서 온 가족들은 풀리지 않는 긴장감과 초조,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그리고 복받치는 감격과 감개무량,또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모르는 당황감에서 말도 제대로잇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같은 상봉 장면을 그는「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이질감과 위화감」이라 술회했다.남북분단은 그 자체가 비극일 뿐만 아니라 혈육을 서로 갈라놓는 또다른 비극을 양산(量産)했지만 수십년만에어렵사리 만나게 되면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가로놓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그때 느끼는 이질감이나 위화감은 서로가 수십년간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며 만남 그 자체가 또다른 헤어짐을 전제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서 또다시 헤어지고나면 남는 것은 허탈감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헤어진 혈육과의 만남을 평생 소원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은 얼마든지 있다.6.25전쟁때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북으로간 형을 만나기 위해 두만강을 헤엄쳐 건 너려다 급류에 휩쓸렸던 한 50대의 사무치는 그리움도 짐작이 갈 만하다.
「돈키호테적인 행동」의 무모함을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형제가 모두 사망하고 오직 하나뿐인 형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그런 방법으로라도 형을 만나려 한 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
장자(莊子)는 『형제란 수족(手足)과 같고 부부란 의복과 같으니 의복이 찢어졌을 때는 새로 만들어 입을 수 있지만 수족이한번 끊어지고나면 다시 잇기 어렵다』는 말로 형제간의 소중함을일깨운다.우리의 분단현실은 그처럼 소중한 형제 관계를 끊어놓은격이니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분단도,이산도,만남도 모두가 비극이지만 결국 만나지도 못한채해프닝으로 끝난 그의 경우는 또다른 형태의 비극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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