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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밥상’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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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안에 세트를 설치하는 건 무에서 유를 찾아가는 ‘예술’이자 각 창작자의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다. [더 뮤지컬 제공]

작곡상-‘록에서 발라드까지’최고의 작곡가는

‘맨 오브 라만차’로 연출·안무 부문 후보에 오른 데이비드 스완.

‘댄싱 섀도우’로 후보에 오른 에릭 울프슨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1975 ~ 87년) 소속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국내에선 뮤지컬 ‘갬블러’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댄싱 섀도우’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부터 모던 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아리엘 도르프만의 우화적인 내용을 대중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 냈다.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의 화음으로 숲의 신비감을 더하고, 이들의 불협화음을 통해 숲의 분노를 보여줬다.

중앙대 작곡과를 졸업한 허수현은 ‘라디오 스타’의 작곡을 맡기 전까지 주로 뮤지컬 편곡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달려라 하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등의 뮤지컬 넘버들은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됐다. 영월 주민들이 부르는 ‘원더풀 영월’, 최곤이 라디오 방송에서 영월 주민들과 전화 연결하는 ‘여보세요’ 등이 전하는 멜로디는 밝고 경쾌하다. 매니저 민수가 최곤에게 떠나겠다고 이야기하는 ‘별은 혼자 빛나지 않아’의 따뜻한 멜로디 등 밝음과 서정성을 고루 갖췄다.

‘싱글즈’의 장소영은 요즘 뮤지컬계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미국 오마이(OMI) 국제아츠센터 음악가 초청과정에서 창작오페라 ‘아! 난설헌’으로 한국인 최초로 선발돼 뉴욕에서 연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드라마나 영화의 음악을 작·편곡해 오던 그녀는 2004년 ‘하드락카페’의 작곡을 맡으면서 뮤지컬로 영역을 넓혔다. ‘미스터 마우스’ ‘하루’ ‘라롱드’ ‘실연남녀’에 이어 최신작 ‘형제는 용감했다’까지, 극과 캐릭터에 어울릴 수 있는 넘버들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디션’의 음악을 쓴 박용전은 작곡뿐만 아니라 극본·작사·연출·음악감독·제작까지 맡고 있는 전천후 창작자다.

‘밑바닥에서’에서 선보였던 대중적인 멜로디는 콘서트형 뮤지컬 ‘오디션’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등장하는 음악은 박용전이 대학 시절 실제 밴드 활동 중에 연주했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들이 라이브로 연주하는 뮤지컬 넘버들은 힘 넘치는 록과 서정적인 발라드 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사상(작사극본상·안무상) - 네 작품, 안무상 - 세 작품 후보에

작사극본상-한국 뮤지컬계에서 전문 창작 인력이 특히 부족한 분야로 손꼽히는 작사 및 극본 부문에는 총 네 작품, 다섯 명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라디오 스타’의 정영, ‘싱글즈’의 성재준, ‘오디션’의 박용전, ‘해어화’의 함경문·김성희가 작사 극본상을 놓고 경합을 벌인다. ‘라디오 스타’, ‘싱글즈’, ‘해어화’ 세 작품이 모두 장르를 넘나드는 ‘원 소스 멀티유즈’에 해당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후보자 중 정영과 김성희, 함경문은 각각 과거 시인과 드라마 작가,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한 바 있다.

‘라디오 스타’의 정영은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후 창작과비평사에서 시집 『평일의 고해』를 출간한 바 있다. ‘해어화’로 작사 극본상 후보에 오른 김성희는 드라마 ‘해어화’의 대본도 함께 작업했다. 나란히 이름을 올린 함경문은 원더걸스의 ‘텔 미’, 양수경의 ‘사랑의 끝은 어디 있나요’ 등으로 알려진 베테랑 작사가다. 몰락한 집안의 복수를 하려는 일패기생의 이야기 ‘해어화’는 지난해 수십억원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 창작 뮤지컬들 중 유일하게 작사 극본상 후보에 올랐다.

안무상-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안무가인 이란영·강옥순과 연출을 함께 맡고 있는 데이비드 스완이 경쟁을 벌인다. 이란영과 강옥순은 ‘명성황후’의 안무를 맡았던 서병구씨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란영은 발레를 전공한 뒤 런던에서 무대 안무를 공부했으며, 뮤지컬 배우에서 안무가로 변신했다. 작품 분석이 뛰어나고 뮤지컬 안무를 단순히 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드라마의 연장선으로 파악한다.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햄릿’ ‘겨울 나그네’ 등이 대표작이다.

‘젊음의 행진’의 강옥순은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로 영화 ‘라듸오 데이즈’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과 ‘풀몬티’ ‘찬스’ 등의 뮤지컬 안무를 맡았다. 강옥순의 안무는 재치 있는 움직임들을 아기자기하게 구성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데이비드 스완은 드라마가 강한 뮤지컬에서 연출과 안무를 함께 맡으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그의 안무는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으로 강한 인상을 주다가도 드라마가 진행되면 잦아드는 강약이 분명한 안무를 선보인다. ‘올 슉 업’에서의 활기차고 경쾌한 안무, ‘맨 오브 라만차’에서 집시들의 춤은 그의 화려한 안무 스타일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누구의 빛과 소리가 더 멋질까

조명음향상 부문은 조명디자이너들의 강세가 눈에 띈다.

우선 ‘나쁜 녀석들’의 백시원은 지난해 열렸던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쓰릴 미’로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던 조명디자이너이다. 음악과 배우의 연기와 밀착시킨 조명의 작은 변화를 통해 효과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나쁜 녀석들’에서 그는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과 기찻길, 리비에라의 잔잔한 바다 위로 떠오르는 커다란 달 등으로 공연을 보는 재미를 더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메노포즈’, 연극 ‘필로우 맨’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댄싱 섀도우’의 조명디자인을 맡은 영국 출신의 사이먼 코더는 로열국립극장,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웨스트엔드의 영국 국립 오페라에서 작업해 왔다.

올 2월 ‘오셀로’로 LA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가진 그는 유럽과 호주, 미국에 이르는 더블린의 오페라 투어 컴퍼니를 비롯해 다양한 오페라와 댄스, 서커스 등의 조명을 맡아 왔다.

‘댄싱 섀도우’에서 그는 자연의 빛을 간직한 평화로운 숲은 물론, 서서히 밀려오는 산불의 느낌과 모두 타 버리고 재만 남아 피폐해진 숲의 형상을 빛으로 그려 냈다.

이우형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브로드웨이에서 언제든지 공연할 수 있는 ‘조명디자이너 유니온’에 소속돼 있는 창작자다.

뮤지컬 ‘헤드윅’ ‘스핏파이어 그릴’ ‘지킬 앤 하이드’ ‘샤인’ ‘이블 데드’ 등의 조명을 맡은 그는 다양한 온도의 빛을 사용해 보는 이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데 능하다.

지하 동굴감옥으로 쏟아지는 한줄기 빛은 극의 몰입을 도와주고, 해바라기 만발한 들판, 별빛 가득한 정원 등의 풍경을 채색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특히 특수조명을 이용한 체스판 장면에서는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스위니 토드’의 강국현은 유일하게 음향디자인으로 조명음향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메노포즈’ ‘쓰릴 미’‘화장을 고치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지하철 1호선’ 등의 뮤지컬과 들국화를 비롯한 가수들의 콘서트 음향을 맡아 왔다.

‘스위니 토드’는 간간이 들려오는 귀를 찢을 듯한 음향이 극의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며 불안한 상황을 극대화했다. 특히 토비아스가 고기 가는 기계를 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톱니바퀴들이 토해 내는 기계음 효과가 돋보였다.

글=‘더 뮤지컬’ 박병성·정세원·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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