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역사의 和音 두개의 바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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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는 남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합리적 욕구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하는 욕망인데,용케도 지난 50년간은 한쪽의 욕구로만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렀다.
그 절름발이 역사의 수치를 확인한 것은 우연히도 얼마전 폭우속에서 열린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였다.그날 시카고심포니와 협연한 요요마의 연주는 한여름 밤을 찬란하게 수놓은 황홀한 축제였다. 노스웨스턴大가 자리잡고 있는 에번스턴의 북쪽,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하이랜드 파크의 야외 음악당에서 60년째 열리는 이 축제가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7월초부터 두달동안 세계 유수의 음악인들이 내는 화음 때문이리라.
그중에는 러시아가 낳은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알렉세이의 광상곡같은 클래식만이 아니라 첫날을 장식한 링고 스타의 록음악도 곁들인다. 축제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으로 막을 내린다.실로 라비니아축제는 짙은 숲속에서 벌어지는 한 여름밤의 낭만 그것이다.
요요마의 선율은 여유에서 나오는 듯 싶다.연주도중 오케스트라의 단원과 몸으로 대화하는 능란함에서 그의 음악은 완숙되는지 모른다.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첸바흐의 제스처는 야외 음악축제답게 자유분방해 고전적인 몸놀림에 묶이지 않는다.오케스트라 전 단원들과 눈.손으로 대화하며 음악이 갖는 특권인 앙상블을 마음껏 연출해낸다.
지휘자는 간혹 정치지도자와 등치(等置)된다.그들은 예외없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나 국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 원한다.그 박수와 성원은 단원이나 참모들이 내는 화음으로가능하며 지휘자나 지도자는 반드시 그 일을 해내 야 한다.
단원중에는 한 곡에서 몇 번밖에 연주하지 않는 심벌즈등 타악기부터 관악기의 주자까지 작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특기.역할대로 지휘자와 호흡하며 전체의 화음을 위해 대단한 공헌을 한다.그러나 정치계의 경우는 이와 매우 달라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지도자 곁으로 자꾸 가려고 한다.그는 바이올린.첼로를 연주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운데에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지휘자처럼 해야 한다.각자가 남의 자리를 넘보지 않고 제 역할에 맞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나아가 중요한 것은 단원(참모)들이 그가 첼리스트건,피아니스트건 협연자와 함께 휼륭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거들며 이끌어가는 일이다.
만일 지도자가 군림하는 가운데 아무에게도 일을 맡기지 않는다면 불협화음만 내게 될 것이다.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그 존재에 영광을 안겨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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